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展

▲ <노상> (Street Scene, 1957, Oil on canvas, 31.5x41cm).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강조하는 박수근 특유의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그림
나현 : 그림 속 대부분의 사람이 표정도 없고 뒷모습만 있더라. ‘우리는 작품을 보면서 어떤 것을 상상한다’라고 쓰인 글귀를 봤는데, 그 말처럼 자연스럽게 그림 속 사람이 지을 표정을 상상하게 됐어.
민지 : 화강암 같은 거친 질감으로 인물의 표정이나 작품의 분위기를 나타낸 게 아닐까.
나현 : 특징적인 기법이 나무껍질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당시의 평범한 풍경을 그린 건데, 그 기법을 통해서 작품에 엄청난 세월을 녹여냈다는 게 느껴졌어. 박수근의 그림에 시간과 공간이 들어있다고 했는데, 시간이 기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민지 : 난 오히려 시공간보다는 사람 자체를 부각했다고 생각해. 박수근의 그림이 대체로 대상만 집중해서 그리고 있기 때문에 배경이 드러나지 않잖아. 어떤 풍경을 통해 그곳이 시장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여인이 앉아 있는 모습이나 차림새로 공간을 드러내더라고. 또, 보통 그림을 그릴 때 우리는 정면으로 보이는 모습을 그리잖아. 그런데 박수근은 가려진 부분까지 그렸더라.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런 식으로 보여준 건 아닐까. 선(善)과 진실도 눈에 보이는 게 아니잖아.
나현 : 선함이라는 게 기법을 통해서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가 그리는 대상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노상을 하고 있는 아낙네를 그리면서 파는 사람의 선함과 사는 사람의 선함을 담아낸 거지. 전쟁이 끝나고 혼란스러운 시절인데도 창신동 판자촌의 일상은 사람 사는 냄새나 정을 느끼게 해.
다은 : 박수근이 주로 여인과 아이 위주의 서민을 그렸잖아. 소재가 친숙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림을 보는데 편안함이 느껴졌어. 분명 그 시대의 가난과 고통의 삶을 그려낸 것인데 좋게 보이더라고. 그림 속 인물의 얼굴에 표정이 없는데도 말이야.
 
박수근의 작품에 녹아든 희망과 행복에 대해
민지 : 박수근은 힘들었던 생활상을 그리는데, 그 속에 희망을 담아냈다고 해. 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거지?
나현 : 박수근이 활동했던 시대는 전쟁 후, 미군의 원조를 받는 못살았던 때잖아? 그래서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은 다들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정말 그들이 힘들었다고만 생각했을까? 난 오히려 행복했을 것 같아. 행복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게 아니잖아. 예를 들면 우리가 취업난과 경제난 속에서도 그 나름의 행복을 꾸려나가듯이 당시에도 똑같았을 거야. 그 소박한 모습을 박수근은 담고 싶었던 거고.
다은 : 그림의 제목이 <노상>, <두 노인>, <아낙네와 세 소녀> 이런 식으로 돼 있더라. 작품명이 그런 것도 박수근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을 그렸기 때문일 거야.
 
일상적인 소재의 의미
다은 : 박수근이 존 닉스(후원자)를 만나면서 한 번도 그림을 팔아달라고 하지 않았다고 하잖아. 그가 그림을 그린 게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볼 순 없는 것 같아. 내가 만약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렸다면 재력가가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렸을 거야. 미술품도 일종의 사치품이니까.
민지 : 생계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화가로서의 지조를 말하는 거야?
다은 : 자신과 같은 처지의 서민을 그리면서 자기 위로를 한 느낌도 들어. 팔기 위해 그린 게 아니라 본인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그린 것뿐인 거지. 그게 다른 사람들에겐 색다르게 느껴져서 많이 팔린 거고.
민지 : 어떻게 보면 박수근은 다른 사람을 그린 게 아니라 자신을 그림에 담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나현 : 동생을 업고 있는 딸을 그린다거나 맷돌을 갈고 있는 부인을 그린다거나 하는 걸 보면 모델이 아름다운 풍경처럼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나 봐. 그냥 내가 있는 장소, 내 눈앞에 보이는 단편적인 하나하나가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거지.
민지 :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도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박수근은 우리가 핸드폰으로 사진 찍듯이 일상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멀리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그의 그림
나현 : 우리가 흔히 아는 박수근의 기법 말고, 가벼운 수채화 같은 그림도 인상 깊었어. 더 순수한 느낌도 들고.
다은 : 어떻게 보면 그런 그림이 보기에 더 편하더라. 박수근 특유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잘 안 보이더라고. 멀찌감치 서서 봐야 뭘 그렸는지 알 수 있었어. 색도 많이 안 쓰고 그래서인지 가까이 보기보다 멀리서 봐야 주제가 느껴져.
민지 : 나도 아까 서있는데 어떤 관람객이 다은이랑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 그 말을 들으면서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떠올랐어.

 

손민지 기자 nara1226@naver.com
이나현 기자 hyun03366@naver.com
정다은 기자 starde1216@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