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계열에 재학 중인 대학생 A씨는 오늘도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강남의 한 스터디카페로 향한다. 교환학생 선발 기준인 전공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몇 달 전부터 과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시험이 2주밖에 남지 않아 일주일에 두 번이던 과외를 세 번으로 늘렸다. 과외가 끝나면 저녁 9시,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그의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집으로 가는 1시간 남짓 동안 휴대전화에 다운받은 토익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집에 도착해 학교 과제와 과외 숙제까지 하고 그가 침대에 눕는 시간은 새벽 1시. 다음날 1교시 수업을 들으려면 아침 6시엔 일어나야 한다.

스펙 쌓기 위해 사교육

이는 비단 A씨만의 일은 아니다. 중·고등학생에게만 국한된 줄 알았던 사교육 시장이 대학생까지 넓어진 지 오래다. 학보사에서 본교 재학생 26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2월 18일부터 23일까지 진행)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이 대학 진학 후 사교육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과반수가 1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닌다고 했으며, 1·2학년 때 사교육을 시작하는 학생은 90% 이상에 달한다.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 100명 중 65명 또한 사교육을 고민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받는 사교육의 형태는 학원(68%), 인터넷 강의(23%), 과외(18%) 순이었다. 사교육을 받는 이유로는 ‘토익 등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가 51%로 가장 높았다. ‘전공수업 이해를 돕기 위해’(20%) 사교육을 받는 학생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의 종류에 대해서는 공인영어(토익, 토플, TEPS 등)가 36%로 1위를 차지했으며, 제2외국어(16%)와 전공보충을 위한 학습(12%)이 뒤를 이었다. 또한, 사교육비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부모님 전액부담’이 53%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부모님 부담 금액이 본인 부담 금액보다 많다’고 응답한 학생도 25%나 됐다. 많은 학생이 사교육을 받기 위해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사교육비 충당을 위해 10명 중 4명은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대학생이 학원가로 몰리는 현상은 기업이 ‘스펙’으로 입사지원자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풍토에서 비롯됐다. 기업과 취업준비생에게 스펙은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지표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취업준비생은 지원서에 스펙을 한 줄이라도 더 적어야 합격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고 믿는다. 이것이 A씨를 비롯한 대학생이 학원과 스터디를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이는 사회 분위기에 대학생은 적지 않은 사교육비 부담을 마주하고 있다. 더불어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등록금뿐만 아니라 학원비까지 조달해야 하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우려를 표한 익명의 한 학우는 “‘누구나 다 하는데 나도 해야 하지 않나’ 등의 불안감 조성이 대학생 사교육 시장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경쟁과 스펙을 강조하는 취업문화가 근본 원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400만 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에 비해 대학에서 양질의 수업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전공과목에 대한 사교육 시장이 생기는 것”이라고 대학 내부의 문제를 지적한 학우도 있었다.

탈스펙의 스펙화

이처럼 대학생이 스펙 쌓기에 몰두하자 ‘취업 5대 스펙’이라는 웃지 못 할 말까지 생겼다. 취업 5대 스펙이란 취업준비생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으로, 학벌․학점․토익․어학연수․자격증을 일컫는다. 이런 경향이 계속돼 이른바 고(高)스펙자가 많아지고 대학생 사교육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최근 기업에는 ‘탈(脫)스펙’ 바람이 불고 있다. 취업준비생은 더 이상 스펙 쌓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고 기업은 참신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점이 탈스펙의 장점이다. SK는 지난해 오디션 형식의 채용전형을 시행했고, 현대자동차는 하반기 채용에서 길거리 캐스팅 방식을 도입했다. 서류를 통해 인재를 뽑았던 스펙 중심의 채용과는 달리 창의력과 열정, 자신만의 스토리를 강조한 채용 형식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탈스펙 열풍은 다른 방식으로 스펙화(化)되고 있다. 기존의 취업 5대 스펙은 봉사․인턴․수상실적이 추가돼 8대 스펙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이제 대학생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오지체험이나 해외봉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더 나아가 오지체험, 해외봉사 등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요한 공인영어 자격증을 취득하려 학원에 다니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면접에서 더욱 특별하게 말하기 위해 면접․스피치 학원을 다니는 대학생도 증가하는 추세다. 1:1 개인지도를 해주는 강남의 한 스피치 학원은 90분 수업 1회에 20만 원이나 든다. 비싼 학원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이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평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문대 K씨(23)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는 나도 다녀야 할 것만 같다. 특히 최근에는 채용시장에서 면접 비중이 높아졌다고 들었는데, 이 때문에 면접 학원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325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기업은 인사채용 과정에서 면접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채용과정별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면접전형은 56.3%(2011)에서 59.9%로 증가했다. 특히 2회 이상 면접을 진행하는 대기업이 86.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보다 37.1%포인트나 증가한 결과다.

  좋은 학벌을 목표로 사교육에 메여 있다가 이제야 조금 숨통이 트인 대학생이다. 그러나 높은 취업의 문턱 앞에서 이 시대 청춘은 다시금 사교육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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