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1절은 95주년을 맞았다. 독립기념관 등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됐고, 동작구와 성동구는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였다. 이처럼 3.1절은 전국적으로 기념하고, 5대 국경일의 하나로 손꼽을 만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3.1절과 3.1운동
 3.1운동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저항해 일어난 비폭력 운동이다. 정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3.1운동이 일어난 날을 국경일 및 공휴일로 제정했다.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당시 국내외 정세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1차대전 종전 후 1919년 1월 18일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14개조 평화 원칙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에는 민족자결주의(‘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라는 주장)가 포함돼 있었고, 이 사실에 우리 민족은 크게 고무됐다.
국내에선 우리가 헌병 경찰 통치라고 말하는 시기를 겪고 있었다. 조선총독부의 총독을 일본 육·해군의 현역 대장이나 대장 출신자로 임명했으며, 갑오개혁 때 폐지된 태형을 부활해 한국인에게만 적용했다. 태형의 적용 범위도 넓어 한국인은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혀 매질을 당해야만 했다. 이때 고종의 독살설이 돌았고, 항일감정은 더욱 고조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2.8독립선언이 3.1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줬다. 1919년 2월 8일, 일본 유학생들이 조직한 ‘조선청년독립단’이 도쿄에서 선언서와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 사실은 곧장 국내의 민족 지도자와 학생들에게 알려졌다.
 의암 손병희를 대표로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의 주축이 됐다. 민족대표는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뒤 3월 1일, 종로의 태화관에서 낭독한 다음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고 일본 경찰에 자수했다. 같은 시각,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 약 5,000명이 모여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선언서 낭독 후 만세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나아가 만주, 연해주, 미주까지 이르렀다.
 3.1운동으로 우리 민족은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인하고 독립 의지를 국내외에 표명할 수 있었다. 또한 3.1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 등 세계 각국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역사에 무관심한 청소년들
 하지만 광복을 위한 독립운동가의 노력을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1. 리포터가 3.1절이 써진 글씨를 보여준다.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거리의 학생이 대답한다. “삼점일절?” #2. 질문이 이어진다. “혹시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알고 있나요?” 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야스쿠니 신사? 야스쿠니 젠틀맨이요?”
 지난해 한 방송사에서 청소년의 역사인식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내용이다. 어린 학생의 답변이라며 그저 웃어넘기기엔 씁쓸하다. 미래의 주축이 될 청소년의 역사의식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다수 전문가는 그 원인을 현 역사교육체제에서 찾고 있다.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는 젊은 세대의 역사인식 미흡 원인으로 역사교육방식을 지적한다. 2005년 이후 입시 당국은 대입 수험생의 학습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바꿨다. 서울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이 한국사를 선택과목으로 지정했고 많은 청소년이 우리 역사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그렇다면, 외국의 역사 교육과정은?
 외국의 교육 커리큘럼과 비교해봤을 때 우리나라 역사 교육과정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독일의 경우 역사 교육 수업은 전체수업의 20%를 차지한다. 한 주에 할당된 시수는 최소 3시간에서 최대 5시간. 역사수업이 매 학기, 전 학년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고등학교의 역사수업 비중은 5% 정도다. 이마저도 ‘집중이수제’ 실시로 주 2, 3시간 1년만 배우고 마치는 학교가 많다. 교과수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시행한 집중이수제이지만, 역사 교육에서는 단점이 더 두드러지는 실정이다.
 역사 과목의 공부 방법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우리나라보다 두 배가 두껍다. 두꺼운 교과서로 수업을 나가고,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역사 스터디를 한다. 이후 수업시간에는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프랑스와 독일은 역사 교과서 외 역사책 읽기가 과제로 주어진다. 교과 외에 다양한 역사 서적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힌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암기 위주다. 연대와 주요사항을 깨알 같이 적어놓고 달달 외우는 주입식 교육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놓치고 단편적인 입시 지식 나열에 그치게 된다. 입시를 위한 지식은 늘지 몰라도, 의식이 생기긴 어려운 교육과정이다.

 반만년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이지만 역사교육은 1년간의 집중이수제로 끝내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우리의 근본을 모르고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체계적인 역사교육을 통해 균형 잡힌 사고를 하고 미래를 일궈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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