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운동

 

A씨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두 잔 값을 계산하고 나온다.
 
어찌 된 영문일까. A씨가 간 카페가 ‘미리내 가게’이기 때문이다. A씨가 낸 추가적인 금액은 가게 밖 현판에 표시되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누군가의 커피값으로 쓰인다. 최근 이렇게 값을 ‘미리 내’ 기부하는 문화는 ‘미리내 운동’이라고 불리며 나눔 문화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리내 운동의 유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유행한 서스펜디드 커피 운동(Suspended coffee, 커피 기부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생활의 질이 개선되며 사라졌다가, 2008년 세계 경제침체로 유럽 경제상황이 어려워지자 다시 시작되기도 했다. 다른 이들이 마실 수 있는 커피 금액까지 함께 내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커피를 선물하자는 취지는 그대로 계승됐지만, 그 적용 장소는 카페 외에 음식점, 복싱클럽, 제과점, 실내골프연습장, 주점 등 다양한 범위로 확장됐다.
 
 
기부도 문화라는 인식의 확산
냉정히 말해, 한국은 기부가 인색한 국가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기부는 기업이나 단체가 주체가 돼 행해진다. 이러한 단체 기부는 방식이나 대상에 있어 쏠림현상의 우려를 안고 있다. 개인의 소액기부에 비해 일회성으로 끝날 확률도 높다. 또한, 개인의 자발성보다는 집단의 강제성이 주요 요인이라는 한계도 있다. 반면, 개인의 기부가 대중화돼 있는 미국의 경우, 기부는 이벤트가 아닌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기부서약(The Giving Pledge)’ 등을 통한 개인의 재산 기부는 전체 기부액을 끌어올리는 데 큰 몫을 해낸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그리고 지난해 이들을 제치고 기부왕에 오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대표적인 기부서약자의 예이다.
 
한국사회에서 미리내 가게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리내 운동은 작년 5월,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의 한 수제 햄버거 가게를 시작으로 국내에 퍼져나갔다. 현재 전국각지에는 총 150군데(서울 40개)의 지점이 있다. 올해 1월엔 서울시청 지하도상가에 미리내 가게 3곳이 새로 생기기도 했다.
 
미리내 가게의 효용성은 누구나 쉽게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마음은 있지만 용기가 없어서 혹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나누지 못했던 이들은 이제 미리내 가게를 매개로 이웃에게 나눔을 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미리내 가게는 매장을 방문한 고객에게 적은 금액이라도 자발적인 기부를 유도함으로써 기부를 문화적 현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돌고 도는 나눔의 행복
미리내 가게가 늘어남에 따라, 최근에는 대학생과의 연계도 추진되고 있다. 고려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화여대, 덕성여대, 명지대, 한양대)이 미리내 운동본부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서포터즈가 구성되기도 했다. 이들은 상점주와의 소통을 통해 미리내 가게를 선정하거나, 상점에 매니저로 배치되어 나눔을 전파시키고 있다. 서포터즈의 단장 이정준(고려대 경영학과, 28세) 씨는 “서울에 있는 40군데의 미리내 가게 중 고려대 근처에만 10군데가 몰려있다. 활동의 내용을 더욱 조직화해서 균형적인 성장을 꾀하고 싶다”라는 포부를 전했다.
 
미리내 가게의 일차적인 목적은 나눔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따로 있다. 바로 소상공인의 영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상점은 미리내 가게라는 공동 브랜드를 갖게 됨으로써 활기를 띠게 된다. 여기에 대학생의 참여는 소상공인과 대학생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상점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홍보 효과를 누리게 되고, 대학생은 매니징(Managing), 컨설팅(Consulting), 마케팅(Marketing)을 체험해보면서 경영학적인 역량과 성취감을 자치적으로 키울 수 있다.
 
미리내 가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절차는 간단하다. 미리내 가게의 상점주와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미리내 가게 공식 블로그(blog.naver.com/hegler)나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mirinae.so)에 올라와 있는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혹여, 내가 기부한 금액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전해질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미리내 운동은 이웃을 향한 ‘기부’보단 이웃 간의 ‘나눔’이나 ‘선물’의 개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타인을 배려하고 나중에 보답 받는 선순환 구조식 기부는 진심과 신뢰를 필요로 하는 우리 사회에서 훈훈한 본보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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