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슨 양(좌)과 그의 동료 토미, 환도열차를 타고 온 지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예술의 전당

 

한국전쟁과 사람들

나현 : 이 연극은 판타지의 형식을 빌린 사실주의 극이라고 생각해. 열차가 1953년도에 출발해서 2014년도에 도착했으니까 극의 배경은 판타지라고 할 수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한국의 전쟁 후 현실이나 정부와 기업의 권력관계를 현실감 있게 나타내고 있어. 특히 신체검사를 하는 장면에서 여배우가 실제로 탈의를 하는 모습은 극을 더 사실적으로 만들고 있지.

준영 : 난 처음에 과거의 열차가 현대 서울에 등장한다는 줄거리만 보고 판타지일 거라 예상했어. 그런데 막상 연극을 보니 가까운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의 얘기처럼 느껴졌어. 전쟁 후에 복잡하게 얽힌 관계가 실제 있던 일 같아 안타깝기도 했어.

다은 : 죽은 사람을 자처하며 살아온 지순의 남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그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했잖아. 처음에는 그 남편이 이해가 안 됐어. 그런데 어떻게 보면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

나현 : 그걸 자기 합리화라고 단정 지을 순 없어. 그 얘기는 연극 속에서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야. 그들 덕분에 우리 국민이 이만큼 먹고살게 됐어. 모두가 그런 과정을 거치고 살아왔는데 그걸 자기 합리화라고 단정 지으면 우리를 이렇게 살 수 있게 한 기성세대에게 무례한 일이 아닐까.

 

무대장치를 통한, 과거와 현재의 소통

준영 : 평평했던 무대를 계단식으로 바꾸면서 장소의 변경이나 시간의 흐름을 표현했던 게 이해가 잘 됐던 것 같아. 막이 내렸다 올라가는 사이에 물건을 이것저것 설치한 게 아니라 등장인물이 무대를 한 바퀴 빙 돌고 장소가 바뀐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게 헷갈리지 않아 좋았어. 실질적인 변화는 조금이었지만 무대가 달라졌다는 걸 관객에게 확실하게 알려주잖아.

나현 : 그런 단순한 무대 장치가 배우에게 더 몰입하게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난 초반에 제이슨 양과 지순이 오른쪽에서 얘기하고, 무대 중앙에서는 과거사가 펼쳐지는 부분이 특히 신기했어. 과거의 인물과 2014년의 인물이 자연스럽게 서로 소통하는 게 정말 멋있었어.

준영 : 보통 여러 이야기를 함께 말하다 보면 한 곳에는 눈이 가고, 다른 한 곳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보면서 둘 다 집중하게 되는 것도 신기했어. 음향도 기억에 남아. 기차 소리와 마지막 노래가 정말 여운이 많이 남았지. 그 외에도 장면이 변화하면서 음향이 삽입될 때 좋았던 것 같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은 : 지순이 사랑과 연애는 다르다고 하잖아. 서울역에서 애정 표현하는 연인을 보고 사랑이 아니라 연애라고 말해. 지순이 마음속으로 좋아했던 청년은 지순에게 연애의 대상이었을까, 사랑의 대상이었을까. 나는 그 경계를 잘 모르겠어. 근데 연극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보이는 것은 연애라고 구분하고 있더라고.

나현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오이디푸스와 연결되는 거지. 오이디푸스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모든 걸 다 깨닫고 혜안을 얻게 되잖아. 어쩌면 지순이 오이디푸스 아니었을까? 환도 열차를 타고 2014년에 와서 남편과 아버지의 잔인함을 알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행위가 자신의 눈을 찌르는 행위라고 생각해. 남편과 이 사회, 나라의 이면을 알게 된 후에 돌아가는 거지.

다은 : 제이슨 양을 못마땅해하던 정부 사람은 “역겨움을 견디면서 사는 것이 고독이나 외로움을 견디는 것보다 더 익숙하다”라는 대사를 해. 결국, 부조리한 사건이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은 채 무마되고, 제이슨 양은 사건의 경위를 알고서도 미국에 돌아가지 않잖아. 혼자 남겨진 제이슨 양은 고독과 외로움을 택했다고 생각해. 돌아간다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는 역겨움을 택하는 것이거든.

나현 : 지순이 오이디푸스 얘기의 결말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청년이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우리는 현실을 응시하고 살아가면 된다”라고 해. 이 연극도 하나의 얘기잖아. 연극 속 현실만을 보고 좌절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현실을 보고 살아가라는 게 주제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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