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본사’(닥치고 본방송 사수)라는 말이 이젠 가물가물합니다. 만약 드라마 <밀회>,  <로맨스가 필요해>, <응답하라>가 몇 년 전에 나왔더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본방송을 보려고 집에 갔겠죠. 그런데 이젠 리모컨 싸움을 안 해도 됩니다. 웹하드 사이트에서 내려받거나 ‘다시보기’를 하면 언제든 볼 수 있습니다. 본방송 시간을 지키는 것보다 실시간으로 나오는 스포일러 기사를 피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요즘 우리는 미디어 콘텐츠를 똑똑하게 소비합니다. 토렌트를 이용하고, 티빙(tving)이나 푹(pooq)을 이용해 지인들과 콘텐츠를 공유하기도 하죠. 거실에 있던 TV로 ‘그 시각 방송’을 보는 시간은 확실히 줄었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어디서든 TV를 봅니다. TV와 스마트 디바이스를 동시에 가진 이용자의 경우, VOD 이용시간이 더 길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20·30세대는 지갑을 쉽게 열기도 합니다. 미디어 콘텐츠는 특히 그렇습니다. 60분짜리 프로그램 하나가 1,000-1,500원이 된 건 불과 몇 년 전입니다. 유료방송 가입자 1인당 매출(ARPU)은 2012년 7,500-8,500원 수준이지만 인터넷까지 포함하면 보통 한 가구가 케이블TV나 IPTV 사업자에 주는 돈은 월 2-3만 원 이상입니다. VOD 가격은 따로 붙습니다.
 콘텐츠를 건당 소비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KBS는 이제 N분의 1로 tvN, JTBC와 경쟁합니다. KBS는 수신료를 월 4,000원(현행 2,500원)으로 올려주면 2019년 광고를 완전히 없애 ‘청정지대’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영방송에 광고가 없어야 한다’라는 원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구나 KBS는 이미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수신료’를 걷고 있습니다. VOD 매출도 따로 받습니다.
 한국은 공영방송 수신료를 전기세와 함께 징수합니다. 특별부담금이지만 사실상 세금과 같은 것이죠. 방송법 62조는 “TV 방송을 수신하기 위해 TV 수상기를 소지한 자는 그 수상기를 등록하고 수신료를 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TV가 있는 가구는 수신료를 내야 한다는 말이죠. 이런 까닭에 통합징수를 폐지하는 게 수신료 인상보다 어렵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런데 반대로 수신료를 내지 않는 방법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PC 모니터를 설치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애플TV로 파일을 내려받거나 구글 크롬캐스트(동영상 스트리밍 기기)를 PC 모니터에 연결하면 됩니다. 유료방송 가입자라면 수신기에 HDMI 단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이걸 PC 모니터와 연결하면 됩니다. 극단적이지만 아예 TV를 없애는 것도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럼 KBS는 뭘 먹고 사느냐고요? 지난해 뉴미디어 광고시장이 방송 광고시장을 역전했습니다. 시청률이 점차 하락 추세인 지상파 몫은 더 적어졌죠. KBS 재정수지 현황을 보면 2002년 7,352억 원이던 광고 수입은 2012년 6,236억 원으로 1,100억 원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수신료는 4,820억 원에서 5,851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2012년 수신료 비중은 37%, 광고는 40%, 기타는 23%입니다.
 광고가 더 빠진다면 1-2년 내 수신료 비중이 광고보다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KBS가 “광고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공영방송으로서 공적 책무를 강화하겠다”라며 다급하게 달려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아무도 KBS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이 지상파가 아니라 비지상파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그래도 KBS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요? 미국 PBS의 재원 85% 이상은 시민과 단체 후원입니다. 핀란드 시민은 2012년 공영방송 수신료 제도를 폐지하고 아예 세금(연 20만 원 수준)을 내고 있습니다. ‘권력을 잘 감시하기 때문에 낼만하다’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지금 KBS에 월 2,500원을 쥐여주면서 응원하고 싶나요? 청와대와 국정원은 KBS가 아니라 JTBC 뉴스에 아프지 않을까요? KBS 수신료를 낼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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