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충격 내성 지수’라는 게 있다면 전 세계에서 한국인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충격에 개인이 견디는 정도를 수치화한 것인데, 우리가 가장 높으리라 추정하는 근거는 많다. 우리처럼 세계인의 이목을 끈 대형사건·사고에 자주 노출되는 나라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사건이나 천안함 사태 등 북한과 관련된 충격은 제외하더라도 민항기 추락 사고에, 멀쩡한 백화점이 통째로 주저앉고, 도심의 다리가 내려앉기도 했다.

이런 일을 겪으며 우리 국민이 받는 심리적 혹은 정서적 충격은 상상보다 크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멀쩡하다. ‘멀쩡함’이 지나쳐 둔감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 북한에서 우리 해역으로 해안포를 발사했을 때도 국내·외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외신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위험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서 사는 우리 국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직장인은 평소처럼 출퇴근했고, 극장과 커피숍에는 인파가 북적댔으며, 연인들은 거리를 활보했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처럼 태연하게 충격을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내성(耐性)’을 먼저 말해야 할 듯하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충격에 적응하는 특성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제인 구달을 처음 본 야생 침팬지는 처음에 그녀의 곁에 다가가는 것을 주저하지만 이내 그녀의 곁에 앉아 바나나를 받는다. 물방울 소리에도 놀라는 비비새가 전쟁터 주변에서 살면 대포를 쏴도 태연하게 둥지를 들락거리는 것도 비슷하다. 사람 역시 반복되는 충격에 빠르게 적응하는 특성이 있다. 충격에 견디는 내성이 형성된 탓이다.

세월호 참사도 이와 비슷하다. 똑같은 사고가 서구의 다른 나라에서 발생했을 때보다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충격지수가 높지 않다. 물론 세월호 참사의 여파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다른 사건과 달리 세월호 참사는 충격을 확대 재생산하는 몇 가지 기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부분 희생자가 고등학생이라는 점이다. 또 사고 과정에서 보인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과 정부의 무능·무대책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충격을 확대 재생산하는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충격에 둔감한’ 우리 국민들마저 ‘집단 트라우마’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구조된 학생이나 실종·사망자 가족은 물론 구조대원이나 사고를 본 국민도 정도의 차이일 뿐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이처럼 충격적인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겪는 대표적 질환이 바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다.

여기에 취약한 직업군이 군인이다. 전쟁터에서 겪었던 충격과 공포가 전쟁 후 일상에 복귀해서도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을 다룬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이나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플래툰>은 이런 문제를 체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PTSD는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물론 주변의 가족, 친구 등 충격을 나눈 사람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초기에는 급성스트레스 장애로 시작되는데, 이 단계에서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면 PTSD로 진단하게 된다.

증상은 크게 재경험과 회피반응, 과잉 각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재경험 증상은 자신이 겪은 사건이 꿈이나 환각을 통해 다시 재현되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으로, 식은땀을 흘리거나 심장이 벌렁거리는 특성을 보인다. 과잉 각성은 전화벨만 울려도 깜짝 놀라 가슴이 뛰고, 쉽게 진정이 안 되는 증상이다. 신경이 너무 긴장해 외부 자극에 지나치게 민감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숙면도 취하기 어렵고 집중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보다 더 일반적인 증상은 회피반응이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사람이 차를 타지 않으려고 하는 것처럼 사고가 연상되는 상황을 극단적으로 피하려는 반응이다.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켜 고립되거나 기억상실에 빠지기도 한다.

PTSD의 문제는 치료를 기피하는 것이지, 치료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주로 약물과 정신치료를 병행하며, 더러는 경험이 같은 환자를 모아 집단치료를 시도하기도 한다. 따라서 증상이 심하다고 느껴지면 치료를 기피할 이유가 없다. 이와 함께 자신만의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갖는 것도 PTSD를 겪지 않는 좋은 방법이다.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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