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알 대신 가로로 여러 줄의 테가 있는 셔터 쉐이드(Shutter Shade) 안경, 찢어진 스타킹, 심지어는 멀쩡한 옷을 일부러 헤지게 만들어 입고 다닌다. “연예인이니까 저런 난해한 옷들을 소화하지”라는 말은 옛말이 된지 오래.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는 데미지 스타킹, 이른바 ‘찢어진 스타킹’을 신은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 키치 패션 중 하나인 '데미지 스타킹'을 신고 있는 가수 이효리
데미지 스타킹을 즐겨 신는다는 김다예(21) 씨는 멀쩡한 레깅스나 스타킹에 구멍을 낸 데미지 스타킹은 찢어진 모양 자체로 색다른 매력을 지닌다고 말한다. “예전엔 스타킹에 올이라도 나가면 바로 사서 갈아 신었잖아요.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엔 일부러 멀쩡한 것을 사서 찢어 입기도 해요. 그때그때 나오는 모양이 달라요” 찢어 입는 ‘맛’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를 주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기도 한다고.   
많은 연예인들이 시도함으로써 일반인들도 즐겨 입게 된 이 패션은 ‘키치(Kitch)’패션이라고 할 수 있다. 김다예 씨가 키치 패션을 즐겨 입는 이유는 한 가지 아이템만으로도 남들보다 눈에 띄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치하고 천박해?’ 그게 매력인걸
  ‘덜거덕, 덜거덕, 삐그덕, 삐그덕, 흔들흔들 흔들려가네’ 한 통신사 광고의 CM송.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버스를 타고 느릿느릿 시골길을 가는 모습에 민요풍의 CM송까지 곁들였다. 이같이 유머러스하면서 독특함을 내세우는 광고들은 보는 사람의 이목을 끈다. 얼핏 봐서는 어떤 내용의 광고인지 쉽게 알지 못하는 광고부터 화면 가득 총천연색으로 이루어진 광고까지. ‘키치’적인 현상은 비단 패션뿐만 아니라 TV광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키치’는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키치적 요소가 있는 영화는 소위 ‘마니아’적 영화로 통한다. 마니아적인 영화답게, 정말 마니아만 즐기다 막을 내려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마니아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인지도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를 들 수 있다. 최근 개봉작인 <부당거래>의 감독 류승완의 영화.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복고풍의 패션과 과장된 연기, 대사로 보는 사람의 손발을 ‘오글’거리게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에 진하게 녹아있는 키치적인 요소 때문에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 

▲ 키치 속성이 잘 나타난 영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중 한 장면
키치(Kitch)는 19세기 독일 예술가들 사이에서 저속한 미술품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로, 대중 속에 뿌리내린 하나의 예술 장르로 그 개념이 확대되었다. 현재는 기존의 것과 다른, 특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며 일상적인 예술, 대중예술 등의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러 유치하고 천박한 방법을 동원하여 기성예술을 조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위 ‘저급’하다고 여겨지는 키치 문화가 우리 생활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키치는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낸시랭이나 노홍철을 봐도 그렇다. 사회는 모범적이고 종속적인 ‘성인’스러운 것들을 추구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키치가 등장한 것이다. 키치는 ‘유아’적인 욕망이라고도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평범한 것을 꺼려하고 남들보다 개성적인 것을 선호한다. 또한 일정한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이 사람들이 다소 촌스럽고 유치해 보이지만 개성 있는 키치를 선호하는 이유다.

대용문화 VS 취미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미술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키치에 대해 “특정문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문화”라는 입장을 보였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키치에 대한 예술가들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이와 달리 피터 워드(Peter War)는 “키치를 이해하기 위해선 키치를 개인적인 선호인 취미의 개념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자신이 집필한 책을 통해 키치의 정의를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잡지와 광고, 유행가, 탭댄스, 할리우드 영화’로 보았다.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것이 과연 키치일까.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키치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 저속한 문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저급하다고 평가 받지만 키치는 무엇보다도 가장 대중적인 것이다. 이것이 소수의 연예인들로부터 시작한 키치문화가 대중들에게도 사랑받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일상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유머러스한 ‘일상의 필수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본래의 키치는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고급예술을 갈망하는 중산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는 키치를 저속하다고 평가했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키치를 발견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고급문화를 누리는 사람들도 대중문화를 소비한다. 키치가 저속하다고 경멸받으며 다른 문화들과 구분되어질 이유는 없다. 그저 서로 취미가 다른 것이다. 앞으로도 키치는 영원히 사랑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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