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 떨어지는 비트에 맞춰 온몸을 자유롭게 움직인다. 물구나무를 선 채 손목과 팔의 힘으로 몸을 바람개비처럼 돌리고, 바닥에 몸을 대고 어깨와 등을 이용해 몸을 회전한다. 곡예에 가까운 몸동작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비보잉(B-boying)은 사실 어느 거리의 뒷골목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초반 미국 뉴욕의 어느 뒷골목.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골목에 히스패닉계 무리가 몰려왔다. 두 집단은 서로 자신의 골목이라 주장하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택한 경쟁의 방법은 강하고 빠른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양 세력은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현란한 동작으로 묘기에 가까운 춤을 선보였다.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 온갖 기묘한 동작을 만들어 내다보니 강한 몸짓과 묘기에 가까운 비보잉 동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구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서로의 춤 실력을 겨루는 배틀(Battle)의 개념이 더해져 비보잉은 발전해왔다. 오늘날에는 주요한 댄스 장르로 자리 잡아 공연 문화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외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그 인기는 이어진다. 국내 비보이 크루는 세계 유수의 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 영국의 ‘UK 비보이 챔피언십’,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등 세계 5대 비보이 배틀을 잇따라 석권하며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2006년, 홍대입구에 비보이 전용극장이 생기면서 비보잉은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이미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05년 첫 막을 올린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를 시작으로 <배틀 비보이> <비보이-쿵!> 등 여러 작품이 비보잉에 극을 더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현재 오픈 런으로 공연 중인 뮤지컬 <쿵 페스티벌> 역시 힙합 음악과 에너지 넘치는 몸짓이 어우러져 관객을 절로 흥겹게 한다.
 
비보잉은 길거리에서 끼리끼리 모여 춤추는, 조금은 불량스러운 젊은이들의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거기에 점차 댄서 개인의 특색을 더해 오늘날 주류 문화로 자리 매김했다. 비보잉의 시작은 어두운 뒷골목이었지만 자유로운 몸짓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활동 폭을 점차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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