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랑별곡>

 

▲ 죽은 순자를 그리워하는 가족들
아버지를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뒤로하고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야 했던 한 여자가 있다. 매일같이 술 마시고 돌아와 다른 여자의 향수 냄새를 풍기는 남편을 그녀는 묵묵히 참고 뒷바라지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는 젊은 날의 사랑도 남편에 대한 애증도 다 옛날 일이 돼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낮잠을 자던 그녀에게 불현듯 옛사랑이 찾아와 함께 떠나자고 한다.
 
“더 닳아야” 하는 어머니의 삶
나현 : 남편과 못 살겠다며 엄마를 찾아온 딸 영순에게 순자가 참고 살라고 하잖아. 더 닳아서 둥글둥글해지면 괜찮아진다면서 말이야. 순자의 일생이 그 한마디에 집약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 순자가 힘든 나날을 참고 견뎠듯이, 그녀의 딸도, 딸의 딸도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마치 여성의 숙명이랄까.
다은 : 맞아. 나도 순자를 보며 우리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 순자가 전근대적인 어머니의 표상이라면, 영순은 우리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민지 : 순자의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는 모나 있고 그게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서서히 이상적인 어머니가 돼 간다는 말일까?
나현 : 아마 순자는 이미 깎여 둥글둥글한 자갈, 영순은 깎여가는 과정에 있고, 우리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본연의 돌로 볼 수 있겠지.
다은 : 그렇지만 나는 순자가 이상적인 어머니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보다는 결혼해서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평생 가족을 위해 사는 우리나라 여성을 상징하는 인물 아닐까.
민지 : 바위틈에서 꽃이 피어난 마지막 장면 기억나? 혹시 그 꽃이 순자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생명력 없는 바위에서 생명이 생겼듯, 엄마가 집안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라는 거지. 실제로 우리 집은 엄마가 집에 있으면 활기가 넘치는 데 없으면 조용해져.
나현 : 물론 엄마가 집에 있으면 집이 말끔해지고 활기 있지만, 이 극에서 그 꽃을 통해 말하려는 건 엄마의 역할보단 사랑이 아닐까. “뼈가 꽉 차면 마음이 찰 자리가 없지”라고 남편이 말하기도 하고.
 
사랑, 유한하면서 무한한
다은 : 이 극을 보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야 소중함을 깨닫고, 그 사람의 의미를 더 깊게 새길 수 있더라. 엄마가 죽고 나서야 자식은 엄마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부인을 향한 남편의 사랑도 느낄 수 있잖아. 그런 감정을 순자가 죽기 전에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결국에는 없으니까 소중함을 알게 되지.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나현 : 하지만 극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있을 때 잘하라는 것보다는, 서로 진심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 아닐까. 죽기 이전에 그런 노력이 있었더라면 이 부부도 행복할 수 있었을 거야. 순자가 죽고 나서 저승에 가지 않고 이승에서 남편을 기다리잖아. 분명 남편을 사랑하는 건데, 그 사랑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살아온 거지. 어쩌면 순자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을 깨닫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
민지 : 나도 순자랑 남편의 사랑이 그 전에는 없었다가 죽음이라는 계기를 통해 생겼다고 생각하진 않아. 원래부터 사랑이 있었는데 표현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우리랑 어르신들이랑 표현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해. 우리는 고백과 같은 표현을 안 하면 상대방이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어르신들은 비교적 표현하는 데 소극적이고 ‘말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래서 관객들이 보기에, 어떤 관객은 죽음을 통해서 사랑이 드러났구나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원래부터 둘이 사랑했다고 봤어.
다은 : 나는 남편과 순자의 사랑은 죽음 이후 그 사람이 없으니까 더 애틋해졌다고 생각하거든. 물론 부인이 죽지 않았더라도 두 사람의 사랑은 계속 있는 듯 없는 듯 마음속에 있었을 거야. 하지만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살았을 것 같아. 죽음으로 인해서 순자도 남편을 용서하고 남편도 순자에게 못했던 표현을 해주고 하게 된 게 아닐까.
민지 : 그러고 보면 우리는 곁에 있을 때는 표현을 잘 못하다가 곁에 없으면 더 애틋해 하는 것 같아. 인간에게 유한성이 있어서 사이가 발전하기도 하는 것 같네.
나현 : 그럼 유한성을 통해서 사랑의 무한함이 드러나는 거네? 순자가 젊을 적 사랑했던 남자가 죽어서도 저승에 못 가고 이승에서 기다려주잖아. 또 순자도 이승에 머무르며 남편을 기다리잖아. ‘사랑은 한순간이다’, ‘유한하다’라고 하지만 이 연극 속에서 사랑은 무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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