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과학

누구나 어린 시절에 한 번쯤 ‘잠자리 공포증’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악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을 켜놓고 자거나 긴 시간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악몽은 달갑지 않은 밤손님이다.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어릴 때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대박’ 신호이길 바라며 출근길에 로또 한 장 구매하는 여유가 생겼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평생 익숙하지 않을 악몽과의 조우. 아예 꿈의 내용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뇌 자극해 자각몽 유도하면 악몽 퇴치 가능?

앨런 홉슨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팀과 독일 연구진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온라인판에 발표한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꿈 조종에 대한 필자의 상상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렘(REM) 수면 상태에 빠진 사람의 두뇌를 미세전류로 자극하면 자각몽을 꾸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자각몽은 말 그대로, 잠을 자는 사람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상태에서 꾸는 꿈을 말한다. 이 상태에서는 스스로 꿈 내용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즉, 연구팀은 잠든 사람을 인위적으로 자각몽 상태에 빠지게 하면 다들 알아서 악몽을 피해 꿈을 전개시킬 거라고 판단한 셈이다.

연구팀은 자각몽을 경험해본 적 있는 실험 참가자 27명을 대상으로 수면 실험을 실시했다. 참가자가 렘 수면 상태로 돌입했을 때, 이마와 관자놀이를 통해 미세전류를 뇌의 전두측두피질로 흘려보냈다. 전두측두피질은 인간의 인지 능력에 관여하는데, 보통 렘 수면 상태에서는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강제로 자극을 준 것이다.

그 결과 잠에서 깨어난 실험 참가자의 70% 이상이 자각몽을 경험했으며, 그 꿈을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류 강도는 40헤르츠(Hz) 정도일 때 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연구팀은 자각몽을 통해 잠에 대한 불안감을 없앤다면 불면증 치료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밝혔다. 물론 평소에 본인이 악몽을 즐기는(?) 탐험가라면 이런 장치가 필요 없을 테지만 말이다.

악몽 두려워도 잠을 푹 자야 뇌에 쌓인 노폐물 청소돼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악몽은 대체 왜 꾸는 것일까? 또 개인마다 악몽을 꾸는 빈도가 다른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 다양한 주장과 연구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하게 원인을 밝혀준 사례는 없었다. 그래도 토레 닐센 캐나다 몬트리올대 수면연구센터 교수와 로스 레빈 미국 예시바대 교수가 2007년 ‘수면의학리뷰’에 게재한 논문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들이 논문에서 주장한 ‘정서네트워크 기능장애 모형(Affect network dysfunction model)’은 다음과 같다.

일단, 이 네트워크는 뇌의 내측 전전두피질과 전방대상피질, 편도체, 해마 등 네 영역으로 이뤄져 있다. 해마에 저장된 각종 기억들은 편집 과정을 거쳐 편도체로 전달되고, 내측 전전두피질과 전방대상피질은 편도체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조절한다. 그런데 이 조절 기능에 문제가 생겨 편도체가 과잉반응을 일으키게 되면 그것이 악몽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평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해마에 저장돼 있다가 꿈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악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악몽이 찾아오는 것도 뇌 활동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복불복’이란 걸까.

아예 잠을 자지 않거나 적게 자면 악몽 자체를 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안하는 편이 낫다. 잠은 뇌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룰루 시에 미국 로체스터대 의대 교수팀은, 뇌에 쌓인 대사 노폐물들이 잠을 자는 사이에 청소된다는 사실을 지난해 10월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시에 교수는 “잠이 부족하면 뇌에 각종 찌꺼기가 남게 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라고 경고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고 강의 도중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당신을 혼내는 교수님을 향해 “뇌에 쌓인 노폐물을 청소하는 중입니다”라고 대꾸하진 말자. 말이 없어진 교수님이 학점으로 응징할 수도 있을 테니까!

전준범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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