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물리친 이야기다. 지난 7월 30일 개봉 이후 관람객이 1,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속된 말로 ‘대박’이다.
 

 그렇다면 흥행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리더(십)의 부재를 꼽는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정치는 실종됐고 사회는 혼란스럽다. 그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대통령은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통령은 초월적 위치의 ‘구경꾼’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대중은 영화 <명량>을 통해 이순신이라는 조선 시대 뛰어난 장수의 모습에서 대리만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익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국가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위대한 인물의 모습에서 이 시대 부족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엿보는 것이다. 그러한 대중의 열망은 일견 타당하다. 
 

 다른 해석은 나라 사랑, 즉 애국심이라는 코드에서 흥행 이유를 찾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가 차지하는 부분이 생각보다 오래되고 깊다는 점에서 ‘애국심’ 코드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리고 최근 일본과의 관계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20세기 이후 경험한 식민의 역사는 그러한 의식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흥행 원인이 외부의 현실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이나 흥행 요소보다는 대중이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량>은 전국에 있는 2,500개 이상의 스크린 중 1,500개 이상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를 선택하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차단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크린 독과점은 영화라는 텍스트의 문제를 넘어서는 자본의 문제라는 점에서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영화관에서 <명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관객들의 문제는 앞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의 이유 외에 <명량> 돌풍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어쩌면 ‘이순신’이라는 인물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이나 완성도가 썩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명량>에서 이순신의 비중이나 역할도 압도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영화 <명량>을 매개로 해 한국인의 의식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신화가 중요하게 작동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동상 제작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이 충무공의 영웅 만들기에 노력을 기울였고, 그 분위기를 경험한 기성세대의 역사 인식은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시대에 대중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 이순신은 그런 점에서 적합한 인물이다. 좌우 이념 대립을 벗어난 조선 시대의 인물이면서, 우리 민족의 적과의 싸움에서 그리 많지 않은 승리를 맛보게 해 줬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이순신이 영웅으로 호명되는 이유다. 영웅신화는 창조되고 재생산된다. 오늘날 다시 호명된 것은 역사적 인물로서 이순신 장군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영웅신화다. 영화 <명량>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대중의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의 환호가 있었지만, 교황이 떠난 지금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레미제라블>과 <변호인>, <명량> 등을 1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봤지만, 사회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서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40여 일의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영웅을 원한다면 도대체 그 영웅은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자. 그 후에 필요한 것은 그 일을 내가 직접 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다림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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