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천주교 성지순례길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제266대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방한일정과 함께 주목받은 곳이 바로 서울 곳곳에 있는 천주교 성지다. 천주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성지순례길은 총 3코스로 이뤄져 있다. 서울시에서 발간한 ‘서울 성지순례길 가이드북’에 따르면, 제1코스는 명동대성당-가회동성당, 제2코스는 가회동성당-중림동 약현성당, 마지막 제3코스는 중림동 약현성당-절두산 순교성지로 구성돼 있다. 북촌한옥마을에서 서울역까지 이르는 제2코스는 가회동성당에서 시작해 형조 터, 우포도청 터, 경기감영 터, 서소문 순교성지, 중림동 약현성당으로 이어진다.
 

  제2코스의 대표적인 순교지 중 하나인 서소문 순교성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가 나온 곳이다. 서소문이란 조선시대 수도 한성의 출입성문이던 네 개의 소(小)문 가운데 하나로, 서소문 밖의 네거리 광장은 조선시대 공식 사형집행지였다. 근처에 시장이 위치해 많은 이가 쉽게 처형과정과 시신을 볼 수 있어 사람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주재한 시성식을 통해 성인이 된 103위 순교성인(기해·병오박해 79위, 병인박해 24위) 중 44명이 처형된 곳도 바로 여기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같은 해 세워진 현양탑은 1997년 서소문 역사공원이 새단장하면서 철거됐고 2년 후 재건됐다.
 

  광화문 시복식 다음 날, 현양탑 앞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헌화한 꽃바구니가 놓여있었다. 작지만 아름다운 꽃바구니를 보며 관광객은 순교자에 대한 넋을 기렸다. 흐린 날씨 탓인지 묵념하는 방문객의 분위기가 더욱 엄숙했다.
 

  제2코스를 돌다 보면 장관과 고난의 현장이 공존하는 역설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코스의 시작과 끝인 가회동성당과 약현성당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지만, 그 사이에 있는 형조 터, 우포도청 터, 경기감영 터, 서소문 순교성지는 모두 순교자를 고문하거나 처형하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시작을 의미하는 두 성당과 비극의 역사를 동시에 지닌 제2코스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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