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은 스펙으로 기업은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

 

광고회사 취직을 준비하는 대학생 A씨는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공모전 여러 개를 동시에 준비하면서 학교생활을 병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학을 해도 A씨의 일정은 빡빡하다.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는 팀원과의 모임이 이틀에 한 번꼴로 예정돼 있다.

봉사 동아리에 들어간 지 6개월이 된 대학생 B씨는 최근 탈퇴를 고민 중이다. B씨는 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동아리에 가입했다. 하지만 봉사보다 음주가무를 통한 회원 간의 친목에만 치중한 동아리에 회의감을 느꼈다.

기업 PR활동과 공모전, 봉사활동, 동아리 등으로 대표되는 대외활동은 이제 대학생이라면 꼭 해야 할 한 가지로 자리 잡았다. 학보사에서 대학생 3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진행)에 따르면, 57%가 대학 진학 후 대외활동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대외활동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 중 78%도 앞으로 대외활동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대외활동은 학교 안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대외활동을 하게 된 이유로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31%)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인맥을 쌓기 위해’가 29%로 그 뒤를 따랐다. 대외활동을 통해 얻은 것을 묻는 질문에도 역시 ‘경험’(72%)과 ‘인맥’(19%)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경험과 인맥을 동시에 쌓을 수 있어 대외활동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된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스펙업’, ‘아웃캠퍼스’, ‘대티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스펙화로 퇴색돼

하지만 채용시장에서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기업이 많아지자 대외활동의 취지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인맥과 경험을 쌓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입사 시 활용할 ‘스펙’으로 적용하게 된 것이다. 대외활동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77%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이유로는 “이력서 한 줄을 더 쓸 수 있다”거나 “면접 시 스토리텔링에 유리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대외활동을 스펙으로 생각하는 대학생뿐 아니라, 이런 대학생을 이용하는 기업 및 단체도 생겨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외활동이라는 명목하에 유명 시민단체나 회사에서 무급으로 일을 했다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설문조사에 응한 대학생 중에서도 상당수가 대외활동을 하며 불편했던 경험을 토로했다. 학생들이 겪었던 불편을 유형별로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부당한 노동력 착취 △공고와 다른 활동내용 △불필요한 경력 요구 △수도권에 치중된 활동범위 △단발성에 그치는 활동 △활동과는 관련 없는 음주가무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한 학생은 “기업 측이 서포터즈를 경제적 비용 절감 수단으로만 여겨 재능과 열정이 착취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답했다. 단순히 기업 홍보 활동만을 위해 선발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기획이나 아이디어를 공모전을 통해 대학생에게 받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응답자는 “주최 측이 처음 모집했던 의도대로 활동을 진행하지 않았고, 약속했던 수료증 및 봉사활동 증명서를 제대로 발급해주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스펙을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발생했다.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활동이나 유명 동아리에서는 공인영어 성적이나 경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스펙을 쌓으려고 대외활동에 지원했는데 그마저도 다른 스펙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SNS 활동 내역을 요구하기도 하면서 블로그 운영마저 스펙의 일부가 됐다.

특정 기간에만 진행되는 대외활동의 단발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참가자는 기업에서 주최하는 활동을 통해 실무경험을 쌓기를 원하는데 짧은 활동기간 탓에 그러한 욕구를 해결하기 어렵다. 기업 서포터즈의 경우 일시적 캠페인으로 그치는 활동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비영리 민간의료단체 프리메드 강지원 대표는 “봉사활동 자체가 진정성 있는 참여보다는 남들 다 채우는 스펙 정도로 보고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봉사의 경우 이와 같은 인식이 더 만연한 것 같다. 현지 주민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고민 없이 접근되는 단기 봉사가 그들에게 얼마나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같은 문제들로 인해 몇몇 대학생은 대외활동에 다소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억지스럽고 강요된 대외활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대외활동은 플러스알파일 뿐 이력서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하면서 즐길 수 있는 대외활동을 원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응답자는 “다들 하니까 나만 안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라고 말해 씁쓸함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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