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찰나의 순간에 있다

이번 여름방학, 딸과 아버지는 천년의 역사가 숨 쉰다던 경주에 다녀왔다. 딸은 첨성대를 둘러보다 그 아래에서 간신히 흔들리는 들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첨성대가 우리나라 국보 제31호라면 그 아래 작게 핀 들꽃은 국보 몇 호 일까?’ 궁금해진 딸이 묻자, 아버지는 들꽃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꽃은 달개비꽃이었다.

20대인 딸은 ‘영원’을 믿는다. 그녀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영원하기를 바라며,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이 이 날과 같이 영원히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은 660살이 넘도록 이름을 알려온 첨성대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일까, 아니면 한해살이 들꽃과 같이 수수하게 사는 것일까’ 그녀는 인생에서 유일한 친구이자 스승인 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한다.

“요즘 영어에서 시제를 배울 때 오선지의 가로줄 위에 ‘과거, 현재, 미래’ 따위를 늘여놓는다고 들었단다. 즉, 시간을 마디마디로 나누어 과거와 미래로 명명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직선에 물들여져 벌어진 일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단다.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시기에 무엇을 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지. 소영이 네가 생각하는 시간의 개념은 찰나의 순간순간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시간’ 또는 ‘영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은 수평의 존재가 아니라 원의 존재가 아닐까. 그래야만 너와 내가 떠난 여행에서 본 많은 것들 중 저 찰나의 들꽃이 너의 기억에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겠니. 너무 큰 걸 성취하려는 인생보다는 꽃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답은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가장 근본이 되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직선의 연속 속에 살고 있는 지금도 달개비꽃의 0.00001초의 각기 다른 순간이 끝없이 순환돼 내 곁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영원은 찰나 속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진정한 영원은 시간이 아니라 깊이에 있으므로.

박소영(경영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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