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영원한 추상성』(2014) - 최은주/은행나무 -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옛날과는 전혀 다른 삶을 누리게 됐다. 그중에서도 인간이 ‘장수(長壽)’할 수 있게 된 것은 문명·기술 발달의 최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 할지라도 젊음을 영원히 누릴 수는 없다. 현대인은 이제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다. 소비시장도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상품 개발에 주력한다.
 
이 같은 현상에 주목한 저자는 질병이 여러 가지 해석학에 맞춰 ‘의미화’됐다며, 질병이 사람에 의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소개해주고 있다.
 
질병의 긍정·부정적인 의미
우리는 질병이 사람의 몸을 약하게 만들고 고통을 수반해, 꼭 치료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을 주는 질병이 긍정적인 의미를 띄는 시대도 있었다. 19세기 초반, 당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결핵은 ‘로맨틱함’과 결합해 영국, 프랑스, 미국의 문학·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환자의 창백한 모습과 야윈 몸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점차 여성이 갖춰야 할 이상적인 용모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질병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자크 르 고프와 니콜라스 트뤼옹이 공저한 『중세 몸의 역사』에서 질병은 죄의 산물로 표현된다. 그중에서도 성과 관련된 죄는 가장 크게 여겨졌다.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보면, 의사 랑크는 척수 결핵이라는 선천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데, 이는 부친이 생전에 저지른 문란한 성행위로 인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서구 역사에서는 성인의 폐결핵, 노인의 중풍 및 신경질환, 근력 퇴화 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성적인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질병은 추하고 부정한 것으로 변모되며, 병을 앓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식의 은유가 생성됐다.
 
여성의 욕망 = 질병?
한편, 질병은 남성중심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왜곡되기도 했다. 18세기 후반 영국의 여성은 사유물이었고, 재산이었다. 따라서 여성이 성의 주체로서 역할을 주장하거나 성욕을 드러내면 병에 걸린 환자로 취급받기도 했다. 이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기 위한 지극히 남성중심의 전략이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등장하는 제인의 연인인 로체스터에게는 다락방에 가둬둔 아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성적으로 불순하고 타락했다”라며 질병과 광기에 가득 찬 악마라고 표현한다. 그의 아내는 기괴한 중얼거림만을 늘어놓을 뿐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이처럼 제인의 낭만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소설에도 여성의 욕망을 억압했던 사회의 이면이 은연중에 그려져 있었던 셈이다.
 
또한, 19세기는 여느 때보다 여성의 몸에 관심이 집중된 시기였다. 여성의 행동과 몸을 통제하는 시기였으며, 의학적 지식은 건강보다는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나의 몸에 흐르는 다양한 증상과 징후를 정상?비정상으로 나누고, 체계적인 감시와 훈육이 이뤄지게 했다. 이에 여성이 비정상으로 진단되면 즉시 그 역할을 박탈하고 사회적 행동 또한 할 수 없게 했다.
 
질병의 추상성을 기억하라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질병은 의학기술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상에 맞춰 질병은 의미를 달리해왔다. 저자는 질병을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꽃을 ‘질병’으로 바꿔보자. 하나의 추상적이었던 증상이 특정 병명으로 불리며 질병의 구체화 과정이 일어난다. 이처럼 과거엔 병이 아니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병이라고 새로이 명명되기도 하고, 병이 아니라고 판단돼 사라지기도 한다.
 
질병은 시대마다 탄생하고 유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속 쓰림이 ‘위 식도 역류’로, 수줍음이 ‘사회불안장애’로 재정립되며 치료를 요구하는 질병처럼 취급되는 것이 그 예다. 이에 저자는 질병의 세분화가 건강뿐만 아니라 질병까지 장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제약회사도 소비시장의 이윤을 따른다는 사실과 ‘이윤이 될 만한 병을 찾아내고 만들어 낸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전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질병이 만연한 사회다. 의학기술의 발달과 제약회사의 마케팅으로 인해 사소하고 추상적인 증상도 질병이라고 정의 내려진다. 저자는 이제 약과 치료에 의존하기 이전에 나의 몸과 내게 주어진 고통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질병의 추상성과 몸의 고통을 읽어낸다면 우리는 질병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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