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영석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이번 달 10-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아리랑 페스티벌이 열렸다. 그 리허설 현장에서 사물놀이패와 관현악단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열정적으로 진두지휘하는 한 지휘자를 발견했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힘을 갖고 있던 그는 바로 지휘자 원영석(42) 씨다. 지난 2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리는 정기 연주회를 하루 앞두고 연습에 매진 중인 그를 작업실에서 만났다.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의 악장 겸 전임 지휘자로 있어요. 악장은 악단의 단원과 지휘자를 연결하는 사람이이에요. 지휘자의 역할이 지휘라면 악장은 단원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악장은 보직일 뿐, 저는 지휘자로서의 역할만 맡고 있어요. 이밖에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시간강사를 하고 있고요. 한국 오라토리오 합창단에서도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국악을 하는 사람에 가깝나?
  국악은 ‘판소리’로 대표되는 전통음악과 창작음악,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최근 콜라보레이션 같은 문화형태가 새롭게 생겨나면서 국악도 다른 문화와 결합이 되는 추세인데요, 이것이 창작음악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어요.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창작음악을 하는 국악인이에요. 그렇지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진 않고요. 전통음악은 계승, 발전돼야 하고 새로운 음악은 독자성과 창조성을 갖고 개발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국악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국악에 애정을 갖고 지휘라는 직업까지 갖게 된 계기는?
  집안에 국악을 하던 분이 계시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남들보다 국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아주 자연스럽게 국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생겨났던 것 같아요. 서울대 국악과에서 작곡을 전공하게 된 건 ‘내가 과연 국악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어요. 하지만 우리의 음악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일을 배우면서 국악을 계승하고 발전하는 일은 누군가가 해야 하고 그게 저여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죠.

오케스트라가 아닌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한다는 게 생소하다
  국악관현악단은 국내에 의외로 많이 있어요. 서울에만 해도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단, KBS 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이렇게 4개가 있죠. ‘국악관현악’이라는 장르 자체는 1950년대 이후에 만들어져서 역사적으로 오래되진 않았어요. 최초의 국악관현악단인 서울시 국악관현악단이 내년에 50주년을 앞두고 있죠.
원래 전통음악에서 합주는 지휘자가 특별히 없었어요. 악단의 형태도 야외에 앉아 연주하는 형태였고요. 현재 실내 무대에서 연주하는 형태도 서양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 거예요.
 
독일 유학이 음악 생활에 어떤 도움이 됐나?
  어렸을 때부터 합창단에서 지휘를 맡다보니 지휘에 관심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국악과에는 지휘전공이 없었거든요. 또 서양음악에 대한 지식은 상대적으로 부족했고요. 그래서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알았던 모차르트, 바하의 음악을 그들이 태어난 곳에서 접하니 새롭고 신선했어요. 그곳에서 독일 음악의 체계성을 공부한 건 ‘국악을 어떻게 좋은 형태로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기회가 됐어요.
유학생 중에 국악을 전공한 사람은 저 뿐이었어요. 그래서 국악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국악 팀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어요. 팀 이름은 ‘다시래기’(새로운 삶이라는 의미의 ‘다시나기’와 새로운 음악이라는 의미의 ‘다시 락’을 합친 말)였는데 재독교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서양친구들로 구성됐죠. 그들과 사물놀이, 가야금 연주를 했던 기억이 한국에 돌아와 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음악을 풍성하게 했어요.

지휘를 할 때 특별한 습관이나 스타일이 있는지?
  지휘 스타일은 제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고요. 다만, 공연 때 모든 걸 쏟아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연습 때 하는 지휘와 공연 때 지휘는 같지 않죠. 아무래도 프로들은 무대에 서면 마음가짐, 눈빛이나 동작이 달라지는 게 있거든요. 단원들도 그렇고요.

최근에 관심이 가는 젊은 국악인이 있다면?
  충무아트홀 상주단체인 ‘앙상블 시나위’라는 팀과 협연한 적이 있어요. 시나위라는 음악 자체가 산조음악을 바탕으로 즉흥적으로 하는 연주인데,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개성을 곁들여 좋더라고요. 종편채널 국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지원자들의 무대도 인상 깊게 봤고요. 이분들에게 바라는 건 대중성이나 쇼맨십에 치우칠 게 아니라 음악적인 깊이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국악의 대중화에 대한 생각은?
  예술가라는 직업 자체가 본인의 끼를 남들에게 보여주려는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아무래도 대중의 취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음달 12, 13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천 원의 행복’도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공연이라고 볼 수 있어요. 단돈 천 원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좋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고 1년에 한두 번 열려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하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이미지를 깨고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려는 시도로 마련됐어요. 한마디로, 세종문회회관 산하단체의 협조아래 다양한 공연을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거죠.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예비 국악인의 고충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텐데, 현재 그들의 고민은 무엇인가?
  취업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해요. 국악인의 일터는 다른 분야보다 한정돼 있거든요. 악단과 그 악단에 필요한 구성 단원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까요.
어느 분야에서나 사회에 나가 본인의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실력이 필요해요. 그러다보니 국악 전공 학생들도 자기 색깔을 확실히 갖추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국악인 중 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사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 음악을 통해 감동을 줘야 하는 거예요. 누군가가 들었을 때 좋은 음악, 깊이가 느껴지는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휘자로서 단원들의 연주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 악단의 수준이 높아져서 국악관현악단에 대한 인식도 높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국악을 작곡하는 사람으로서는 좋은 국악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우리 음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게 제게 주어진 역할인 것 같아요. 목표이기도 하고요.


국악의 세계화는 어떻게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지?
  우리만 좋다고 해서 국악을 알리긴 어렵잖아요. ‘누가 보더라도 한국음악이 좋다’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만큼 노력이 필요하겠죠. 다양한 사람과 교감할 수 있는 요소를 세부적으로 마련하는 거죠. 또, 훌륭한 연주자를 양성하고 국악의 우수성을 살릴 수 있는 작곡이 뒷받침돼야 하고요. 제 개인적으론 우리 국민에게 먼저 국악을 알리는 게 그 시작인 것 같아요. 
국악의 세계화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시도되는 추세예요. 거기에는 세계인의 다양한 취향에 부합할 수 있도록 국악을 현대화하는 것도 포함돼요. 요즘 국악이 ‘멀티유즈(Multi use)’화 되고 있는 거 아시나요? 그 예가 다양한데요, 이미 많이 알려진 해설을 곁들인 공연도 그렇고요. 그밖에 국악에 비보잉을 접목시킨 것, ‘춤 춘향’이라고 해서 춘향전을 춤으로 표현한 공연도 있어요.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꿈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당한 실력을 갖추는 것, 자기 PR을 하는 것도 중요해요. 저는 여러 음악 활동 중에서 지휘, 지휘 중에서도 국악관현악단 지휘를 하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직업적 소수에 속하는데요.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서 열심히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이건 제가 해야 하는 일, 저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꿋꿋이 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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