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소설 부문 당선작

고양이 꼬리
 

임선영(문예창작 13)

 깜깜한 밤이다. 경미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가로등만이 반짝였다. 경미는 익숙한 오르막길을 지나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섰다. 아파트 입구에 있는 경비초소에는 꾸벅거리며 조는 경비아저씨와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이 보였다. 경미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경미의 집은 103동이었다. 101동과 103동 사이에 있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지나가는데 그림자가 많아졌다. 주차장은 103동과 맞은편 104동의 가로등이 어렴풋하게 닿아 정확히 무엇인지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확인하기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돌아갈 경미였지만 왠지 모를 호기심에 지하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가까워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경미가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자 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 여러 마리와 사람 한 명이 보였다. 경미는 발소리를 낮추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사람은 고양이 무리 중에서 한 마리를 안더니 103동으로 향했다. 경미는 비틀거리며 사람을 따라 103동으로 들어갔다.
 103동 현관 불이 켜지자 사람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검은 모자와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남자였다. 경미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고양이와 남자를 살폈다. 남자의 얼굴은 모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품에서 노란색에 검정 반점이 있는 고양이가 꿈틀거렸다. 경미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려 할 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경미의 손을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에 탔다. 경미는 머쓱해진 채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남자는 엘리베이터의 11층 버튼을 눌렀다. 11층은 내가 사는 곳인데? 경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자신의 맞은 편 집에 사는 남자였다. 경미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경미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남자의 시선이 누구냐고 묻는 듯 했다. 경미는 멋쩍게 웃으며 11층에 사는 부녀회장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제야 남자는 표정을 풀고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다. 경미가 고양이에 대해 물으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남자는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와 함께 재빠르게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미는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경미는 11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경미의 엄마인 혜숙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경미는 혜숙이 끓여놓은 콩나물국을 먹으며 능글맞게 대답한다. 친구 생일이라서 그런 거야. 걱정 마, 어차피 아무도 나 안 잡아가. 혜숙은 경미를 보며 한숨을 쉬더니 오늘 아파트 회의가 있다며 집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경미가 혜숙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혜숙은 요즘 나타나는 고양이들 때문이라는 말과 함께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 후다닥 나가버렸다. 경미는 식탁을 치우며 어제 보았던 광경을 떠올린다. 고양이, 앞집 남자.
 경미가 집에서 뒹굴고 있자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혜숙이었다. 혜숙은 오자마자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경미는 그런 혜숙을 보며 식탁에 앉아 물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뭘. 무슨 일 있는 거야? 응?”
 경미의 물음에 혜숙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식탁에 앉았다. 혜숙은 오늘 아파트 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오늘 아파트 회의는 고양이 문제 때문에 소집된 회의라고 했다. 요즘 고양이들이 아파트에 한두 마리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창고에서 새끼를 낳는 고양이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의 민원이 끊이질 않자 아파트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고 온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겼는데?”
 “아니, 그래서 내가 고양이를 보호소에 보내자고 하니까 언제 고양이를 잡아서 보호소에 보내느냐면서 고양이들이 제일 많은 창고에 가둬버리자는 거야. 내가 그건 좀 아니라고 하니까 엄청 뭐라고 하면서 나한테 부녀회장이 어쩜 그럴 수 있냐고, 부녀회장직을 내놓으라고 하는 거 있지?”
 “그래서 엄마는 뭐라고 했어?”
 “그냥 알았다고 했지 뭐. 내가 반대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어차피 투표하니까 과반수도 넘게 그렇게 하자고 하던걸.”
 “너무해!”
 경미는 식탁을 박차고 일어났다. 고양이를 생매장하다니! 경미는 이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흥분했지만 혜숙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경미는 당장 경찰에 신고할 일이라고 화를 냈다. 혜숙은 그런 경미의 등짝을 때리며 그만하라고 했다.
 “너 엄마 부녀회장 잘리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그래도 이건 아니야!”
 “어쩌겠니, 사람들이 다 그러자고 하던데.”
 “누가 그러자고 했는데?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낸 거야?”
 “앞집 남자.”
 앞집 남자? 경미가 다시 한 번 되물었지만 답은 같았다. 앞집 남자. 혜숙은 앞집 남자라는 말을 끝내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경미는 앞집 남자라는 말에 황당했다. 어제 고양이를 데리고 가던 것도 앞집 남자였는데, 고양이를 생매장할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앞집 남자라니! 경미는 소파에 앉아 앞집 남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앞집 남자와 만난 건 몇 번 되지 않지만 동네에서 103동 동대표라고 하면 사람들이 모두 엄지를 들 만큼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103동 동대표도 역임할 만큼 사교성도 좋고 사람이 서글서글했다. 단점이 있다면 아직까지 장가를 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들 30대 후반인 앞집 남자를 보며 노총각이니 어쩌느냐는 걱정과 함께 자신의 육촌 친척부터 딸까지 소개해준다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하물며 앞집에 사는 혜숙에게도 앞집 남자에 대해 알려달라고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미는 앞집 남자가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경미가 생각하고 있을 때, 혜숙이 옷을 갈아입고 안방에서 나와 부엌과 연결된 베란다에서 커다란 포대자루를 끌고 나왔다. 밤이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경미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혜숙과 함께 부엌으로 밤 자루를 옮겼다. 혜숙은 커다란 밤 자루를 보며 언제 다 먹을까 고민했다. 경미는 무언가 번뜩 생각난 듯 밤 자루에서 밤을 한 움큼 꺼내 접시에 담았다. 혜숙이 뭐하냐고 묻자 경미는 앞집에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집을 나섰다.

 경미는 아파트 복도에서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마음대로 뻗친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고 돌돌 말려있던 바짓단을 가지런히 내렸다. 큼큼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앞집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1101혼데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경미가 다시 노크하려는 찰나 앞집 문이 열렸다. 앞집 남자는 흰색 카라티에 운동복 바지 차림이었다. 남자는 어제와 달리 다정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경미는 밤 그릇을 보이며 밤 때문에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경미는 남자에게 밤 그릇을 안겨주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집은 경미의 집보다 깨끗했다. 경미는 신기한 듯 쳐다보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남자는 밤 그릇을 든 채 경미의 뒤를 쫓아다녔다.
 “저기, 앉아 계세요.”
 경미가 작은 방 문을 열려고 하자 남자는 경미의 어깨를 잡은 채 거실 소파로 안내했다. 반강제로 앉혀진 경미는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집이 참 깨끗하다는 말을 남겼다. 남자의 집은 경미의 집 구조와 같았다. 거실, 방 두 개, 부엌, 화장실 하나. 집을 열면 왼쪽으로 거실이 있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안방이 있다. 그리고 안방에서 오른쪽으로 화장실, 부엌이 있었다. 작은 방은 입구에서 바로 오른쪽에 있었다. 경미는 집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텔레비전을 올려놓는 테이블 위에 하얀색 털로 된 털 뭉치가 보였다. 경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텔레비전 쪽으로 다가갔다. 털 뭉치가 아니라 털로 된 키홀더였다. 경미는 털을 쓰다듬어보았다. 인조로 된 털이 아니라 진짜 털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경미가 키홀더를 살펴보려고 하자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밤을 담아두었던 그릇에 자두를 담아 경미에게 건네주었다. 경미는 몸을 수그린 채로 어정쩡하게 남자가 준 그릇을 받아들었다. 남자는 경미에게 지금 무엇을 하느냐고 눈으로 물었다. 경미는 당황해 하며 키홀더가 참 예쁘다고 이야기했다.
 “신기해요, 인조털이 아니라 진짜 털 같아요. 어디서 나셨어요? 저도 이런 거 갖고 싶어서. 죄송해요.”
 “아뇨, 친구가 모피 일을 해서 얻었어요. 나중에 하나 얻어다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경미는 자두를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경미가 부엌에 자두 그릇을 놓는데 검은 털이 보였다. 아까 그 키홀더는 흰색이었고 어제 데려간 고양이는 노란색이었는데 검정 털은 뭐지. 경미는 열어주지 않은 작은 방에 대한 찝찝함을 버릴 수 없었다.

 혜숙은 친구를 만나러 가고 경미 혼자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앞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미는 틀어놓았던 텔레비전 소리를 죽이고 복도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를 들어보니 앞집 남자 밑에 사는 재진 엄마의 목소리였다. 재진 엄마는 혜숙과도 친한 사이였다. 문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재진 엄마는 앞집 남자에게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니, 도경 씨. 우리 재진이가 고삼이라는 거 몰라요?”
 “네?”
 “아니, 며칠 전부터 말이야. 밤만 되면 집이 시끄러워서 우리 재진이가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잖아요. 이제 수능이 며칠 남았는지 알아요? 재진이가 새벽까지 공부하는데 밤중에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다잖아요! 우리 애 성적 떨어지면 책임질 거예요? 네?”
 도경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주의하겠다며 거듭 사과했다. 화가 난 재진이 엄마는 도경의 사과에 화가 좀 누그러진 듯 다시 그러면 층간 소음으로 신고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경미는 재진 엄마가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볼륨을 올렸다. 경미는 자신의 방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문제의 답은 작은 방이다.

 경미는 아까 자두에 붙어있던 검은 털을 살펴보며 커피를 마셨다. 벌써 새벽 두 시 반. 경미는 오늘도 도경이 나갈 것이라 생각하고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경미는 내려오는 눈을 치켜뜨며 앞집 남자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 세 시. 앞집 문 열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경미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있는 후드집업을 챙겨 입고 카드를 챙겼다.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소리가 나고 경미는 혜숙 몰래 집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가자 도경이 지하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경미는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해 맥주 두 캔을 샀다. 경미는 아파트 입구까지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경비초소를 지나 걸음 속도를 낮췄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사온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집으로 향했다. 도경은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었다. 경미는 103동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다시 나와 도경에게 향했다.
 “어머, 앞집 사시는 분 아니세요? 뭐 하시고 계세요?”
 경미는 입꼬리를 올리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도경은 어제와 달리 모자를 벗고 있었다. 도경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참 좋은 일 하시네요.”
 “그런가요?”
 도경은 어제와 같이 고양이 중에 한 마리를 품에 안아 들었다. 고양이는 갈색에 흰색이 섞여 있었다. 경미와 도경은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경미가 어제 고양이처럼 병원에 데려갈 것이냐고 물었다. 도경은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말과 함께 화제를 돌렸다.
 “술을 참 좋아하시네요.”
 “아, 네. 제가 좀 좋아하죠.”
 “대학교에 다닌다고 했죠?”
 이제껏 상황과 반대로 도경이 경미에게 질문을 해왔다. 경미는 도경의 질문에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해나갔다. 질문 몇 가지에 대답해주고 나니 벌써 11층이었다. 도경은 경미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경미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생각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경미가 잠에 취해 있을 때 혜숙이 경미를 깨웠다. 도경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경미는 눈곱도 떼지 않은 채로 나갔다. 도경은 한 손에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경미가 무슨 일이냐 묻자 도경은 고양이 때문이라고 했다. 혜숙으로부터 경미에게 수의과 다니는 친구가 있다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 했다. 경미는 혜숙을 찾아보았지만 혜숙은 이미 안방에 들어가고 난 후였다.
 “고양이가 아픈데 제가 다니는 병원은 일요일엔 휴무여서요. 도와주실 수 있나요?”
 경미는 한참 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본과생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경미는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경의 바지 주머니로 저번에 보았던 키홀더와 비슷한 노란색에 검은 반점이 들어간 털 뭉치가 나와 있었다. 저번에 본 고양이도 노란색에 검은 반점이 있었는데. 경미는 키홀더를 보며 저번에 느꼈던 찝찝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도경은 경미친구와 고양이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 고맙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돌려주었다. 경미가 친구에게 지금 올 수 있느냐고 묻자 친구는 자신의 학교가 어디인지 잊었느냐며 학교에 있어 올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도경에게 응급처치방법을 알려주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도경은 경미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중에 친구와 함께 밥을 산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경미는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사람 말이 맞아?”
 경미는 도경이 물었던 증상에 대해 세세하게 물었다. 친구는 맞다는 이야기와 함께 고양이한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경미는 친구의 말에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하지라고 남기며 전화를 끊었다. 경미는 도경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노란색 털뭉치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 밤, 도경의 집은 조용했다. 경미는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일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니 혜숙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경미는 아침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오늘이 그 날이잖아.”
 무슨 날이냐고 경미가 재차 묻자 혜숙은 고양이 죽이는 날이라고 얘기했다. 경미는 들고 있던 국을 엎을 뻔했다. 경미가 왜 이렇게 빠르게 하느냐고 묻자 혜숙은 오래 끌다가는 동물 보호 단체에서 올 수도 있다며 빨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경미가 도경이냐고 묻자 혜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혜숙은 밥을 차리며 얼른 먹고 가라고 했다. 경미는 이럴 수는 없다며 화냈지만 혜숙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제발 자신의 체면을 봐서라도 조용히 있으라고 당부했다.
 “너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부녀회장 된 건지 알지? 엄마 위해서라도 제발 참아, 응?”
 경미는 혜숙의 당부에 알았다고 대답하며 집을 나섰다. 혜숙은 원래 부유하게 자란 여자였다. 하지만 남편의 사업실패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혜숙의 히스테리는 날로 커져갔다. 그것을 잠재워 준 것이 부녀회장이라는 명예였다. 혜숙은 남들보다 못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비록 자신이 사업실패로 이곳에 왔지만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경미는 혜숙이 부녀회장이 되기까지 주위 사람들에게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아파트 행사는 물론이고 노인정의 반찬까지 도맡아 했다. 경미는 참겠지만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아파트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경미는 아파트 앞 편의점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고양이들을 창고에 가두면 내려가 몰래 풀어주려고 계획했다. 경미는 집에서 나오기 전 가방에 책들 대신 공구들을 챙겨 넣었다. 망치, 멍키스패너, 이름 모를 연장들까지 다 챙겨 나왔다. 경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의점의 후미진 파라솔 밑에 자리를 잡았다. 11시쯤 되었을까 경비초소에 있던 경비 아저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미는 가방을 메고 아저씨 뒤를 밟았다.
 아저씨는 아파트에서 들어가면 바로 있는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관리사무소 앞에는 각 동의 대표들, 아파트 부녀회 사람들 몇 명,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간에서 제일 큰 목소리로 도경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 이게 제 친구가 구해다 준 가스입니다. 창고에 이 가스를 넣고 문을 잠그면 금방 죽을 겁니다. 다들 방독면 챙기셨죠? 독한 가스니 마시지 않게 조심하세요.”
 도경을 선두로 사람들은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경미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후에 뒤따라갔다. 혜숙과 여자들은 지하주차장 입구에 있고 남자들만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경미는 멀리서 그 모습을 살펴보다 아파트와 연결된 지하주차장 입구로 향했다. 창고는 지하주차장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홀로 있었다. 경미가 지하주차장과 연결된 입구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미는 뛰기 시작했다. 창고 쪽에 거의 다 왔을 때쯤 경미는 사람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다들 방독면을 쓴 채였다. 경미는 주차된 트럭 뒤에서 사람들이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경미는 창고에 다가갔다. 가스 연기가 창고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경미는 어지러움을 참으며 가방에서 망치를 꺼냈다. 경미가 망치를 들고 창고에 다다르자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가스 연기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누군가 방독면으로 쉭쉭거리며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경미는 가방에서 연장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연기가 자욱해 보이지 않아 제일 커다란 것으로 꺼냈다. 경미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창고에 다가가자 누군가 경미의 어깨를 잡았다. 도경이었다. 경미는 연장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내 힘이 풀리고 정신을 잃었다. 경미는 정신을 잃기 전 도경이 웃는 얼굴을 본 것 같았다.

 경미는 병원에서 꼬박 이틀을 지냈다. 혜숙은 경미가 깨어나자 그곳은 왜 갔냐고 타박했다. 경미는 일어나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혜숙의 표정이 굳더니 이미 끝난 일이니 그만 잊어버리라 했다. 경미는 당장 집으로 가야겠다고 했다. 혜숙은 이제 그만하라고 말렸지만 경미는 혜숙을 뿌리치며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커다란 포대자루를 용달차에 옮겨 싣고 있었다. 경미는 용달차를 살펴보고는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창고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경미가 근처에서 포대자루를 옮기고 있는 사람에게 고양이들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다 죽었지, 뭐. 여기, 이 포대자루에 담긴 게 고양이 사체잖아요.”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포대자루를 옮겼다. 경미는 지하주차장에서 뛰어나와 아파트 입구에 있는 용달차를 살펴보았다. 꽤 큰 포대자루가 여러 개였다. 경미가 일꾼들에게 다 고양이냐고 묻자 다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번 재활용 쓰레기도 있고 그렇지. 고양이는 몇 개 안 돼.”
 경미가 지하주차장에서 봤던 사람이 포대자루를 싣자 일꾼들은 아파트 나무 밑에 잠시 앉아 쉬었다. 일꾼 중 한 명이 편의점에 가 맥주와 담배를 사왔다. 경미가 포대자루를 보며 허망하게 있자 지하주차장에서 본 남자가 경미에게 맥주 한 캔을 건네주었다.
 “아가씨,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런 일 하는 우리도 마음이 편치 않아. 그런데 어쩌겠어.”
 경미는 남자가 건네준 맥주 캔을 꼭 쥐었다. 일꾼들은 경미를 보며 다들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다른 쓰레기처리 작업은 많이 했지만 고양이 사체 작업은 또 처음이라며 재수 옮겨붙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러다 고양이 중에 꼬리가 없는 고양이는 더 이상하다며 수군거렸다.
 “꼬리가 없는 고양이가 있었다고요?”
 “아이고, 이 아가씨 고양이 얘기하니까 반응하네. 그래, 그런 고양이가 있었다니까. 한두 마리가 아니었지, 아마? 누가 일부러 잘라 간 것 같았어.”

 경미는 103동 엘레베이터를 타고 11층 버튼을 누른 후 미친 듯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노란색에 검은 반점이 있던 고양이, 검은색 키홀더, 그리고 노란색 반점 키홀더까지. 경미는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11층 문이 열리자 문 앞에서 도경, 재진 엄마, 경찰 셋의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경미도 세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아니, 왜 못 보여준다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밤마다 시끄럽냐는 말이야!”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경찰은 화내고 있는 재진 엄마를 달랬다. 도경은 재진 엄마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재진 엄마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자 경찰이 도경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기 아주머니가 이렇게 화내시는데 한번 보여주시죠? 방 본다고 해서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도경은 묵묵부답이었다. 재진 엄마는 도경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방에서 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시끄럽냐고! 탕탕거리는 소리 때문에 우리 재진이가 매일 밤에 잠도 못자고 공부도 못해요. 대체 뭘 하는 데 그러는 거야? 어디 한번 보자니까?!”
 재진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도경이 경미를 인식하고 쳐다보는 사이 재진 엄마는 도경의 몸을 밀쳐 번호 키를 누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당황해 재진 엄마를 말렸지만 재진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도경은 경미를 한번 쳐다본 후 재진 엄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재진 엄마는 열리지 않는 문에 답답한지 가슴을 쳤다. 그러다 다시 시도해보길 몇 번, 문이 열렸다.

 경찰은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재진 엄마를 말렸고 도경은 재진 엄마를 잡으려 했지만 재진 엄마가 빨랐다. 경미도 엉겁결에 도경의 집으로 들어갔다. 재진 엄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도경의 집으로 들어가 작은 방 문손잡이를 돌렸다. 그리고 문은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하지만 경미는 보았다. 방 속을 부유하고 있던 고양이털을, 그리고 고양이를.
 도경은 문을 닫고 문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아까와 달리 목소리를 낮게 깔며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도경은 문을 막은 채 입을 굳게 닫았다. 재진 엄마의 호들갑은 점점 더 심해졌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아까 본 게 맞는 거야? 뭐야, 뭐야?”
 경찰과 재진 엄마는 문 앞에 있는 도경을 밀치고 문을 열었다. 도경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옆으로 밀려났다. 드디어 그곳의 문이 열렸다. 경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맞는지 눈을 비볐다. 방 안에는 정육점에서나 쓸 만한 커다란 스테인리스 재질의 테이블이 있었고 맞은편에는 고양이 꼬리들이 걸려있었다. 테이블 밑에는 동물 케이지로 보이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고 문에서 가장 먼 쪽에 고양이 사체를 담아두는 통이 보였다. 통은 원래 녹색이었지만 피가 많이 묻어있어 빨간색으로 보였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커다란 칼과 함께 실과 바늘이 보였다. 경미는 도경이 꼬리를 자른 뒤 실로 봉합한 후에 장식품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벽에는 방음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뿌리는 스프레이형태의 방향제가 몇 분에 한 번씩 칙 소리와 함께 분사되고 있었다. 방향제는 벽마다 하나씩 네 개가 있었다. 고양이털을 청소하기 위해 로봇청소기가 움직이고 있었지만 공중으로 털들이 날아다녔다. 재진 엄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떠들다 이내 곧 휘청거렸고 경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경을 쳐다보았다. 경찰은 도경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경미는 경찰이 도경과 씨름하는 틈을 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은 현장을 훼손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경미는 방으로 들어가 방에 걸린 고양이 꼬리를 살펴보았다. 제일 안쪽에 있는 고양이 꼬리는 갈색에 흰색이 섞인 털이었다. 경미는 고양이 꼬리를 만지려 했지만 속이 울렁거려 만지지 못했다. 경미가 더 살펴보려고 하는데 경찰이 경미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왔다.
 
 조금 지나자 경찰들이 오고 재진 엄마는 재진이의 부축을 받으며 아랫집으로 향했다. 재진 엄마가 내려가기 전 경찰은 경미와 재진 엄마에게 필요하다면 증인 진술 때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거의 희박하지만 말이다. 아파트에 경찰차가 오고 시끄러워지자 온 동네 사람들이 103동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도경이 잡혀가는 것을 보고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금세 말이 돌아 도경이 결혼사기를 했을 것이다, 도경이 도박을 저질렀을 것이다 등등 헛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도경의 사건으로 인해 아파트에서 고양이들을 생매장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혜숙을 비롯한 몇 명의 사람들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혜숙은 자신도 억울한 피해자라며 외치고 다녔지만 소용없었다. 혜숙은 한동안 우울해하며 집안에서 나가지 못했다. 재진 엄마는 유일한 목격자였다고 으스대며 도경의 사건에 대해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윗집에서 쿵쿵 소리가 날 때부터 이상했다, 도경에게 정신적 피해보상을 신청할 것이다.
 경미도 혜숙과 같이 한동안 집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경미는 자신이 일을 방치한 것 같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매일 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꿈을 꿨다. 혜숙은 남편에게 이사를 가자고 졸랐지만 경미네 사정상 이사 가기는 어려웠다. 경미도 죽은 고양이들을 두고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소설 당선 소감
 문예창작과에 진학 후 늘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할 때가 많았습니다. 저번 겨울방학을 집에서 웅크리고 보내고 이번 여름방학을 동아리라는 명분하에 공부하지 않고 보내면서 제 스스로에게 실망했습니다. 이번 학기는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며칠 되지 않아 나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를 채찍질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소설창작실기’ 시간에 냈던 소설을 퇴고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었습니다. 소재만 남기고 처음부터 이야기 구조를 바꿔나가면서 예전 수업에서 들었던, 그리고 이번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으며 고쳐나갔습니다. 학우들과 교수님들의 조언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좋은 결과를 바라고 쓴 것이 아니었는데 수상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모자란 제 작품을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수상을 발판삼아 더 발전하고 나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설 심사평
 응모한 작품들을 모두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각자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유동성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액체 근대를 살아가는 젊은세대의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 자기만의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긍정적 측면으로서의 이해가 가능한 대목이다. 심사의 기준은 우선 이야기체를 구성하는 방식의 참신함에 초점을 두었고, 여기에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재독 끝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연장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소음 연립」, 「고양이 꼬리」이상 세 편이었다. 「연장전이 시작되었습니다」는 아버지의 실종을 모티프로 한 블랙 코미디 형식의 가족서사이다. 시종 활달한 문장력을 통해 유쾌하게 이야기를 끌고가는 솜씨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그 어조가 오히려 주제의 무게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소음 연립」은 다양한 인물의 설정과 그 개개의 인물들을 부각시키려는 작가의 진지한 시선이 돋보인다. 요컨대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하려는 의도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수평적으로 나열되면서 막상 이야기가 짜임새없이 마무리되고 말았다.
 

 당선작으로 뽑은 「고양이 꼬리」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갖춘 소설이다. 우선 문장이 안정돼 있는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솜씨를 보여준다. 다소 진부한 소재일지도 모를 길고양이 모티프를 사용해 참신한 방식으로 주제를 돋을새김하고 있다. 작가는 아파트 단지를 배경으로 주민이 집단 동의를 통해 ‘고양이들을 생매장’ 시킨다거나, 도살에 의한 방식으로 ‘고양이 꼬리’를 자르는 취미를 가진 사내를 통해 우리 일상에 개입돼 있는 폭력과 야만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것을 묵인하거나 무감각하게 소비하는 집단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 자체를 미덕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으로 보다 정진하기를 바란다.
 

윤대녕(소설가·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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