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신드롬에 깃든 각박한 현실

2013년 말에 등장했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안녕하지 못한 삶에 대한 화두를 담아냈다면, 작년 말 신드롬을 일으킨 <미생> 열풍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삶에 대한 위로를 담아냈다. 이미 무언가를 대단히 바라거나 꿈꾸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다. 섣부른 꿈은 여지없이 꺾어지면서 희망 고문이 되기 일쑤다. 그러니 나은 걸 바라는 것보다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고, 대단한 걸 이루기보다는 그저 하루라도 버텨내길 바라는 것일 게다.

이런 시대이기 때문일까. tvN <삼시세끼>라는 어찌 보면 엉뚱하고도 실험적인 한 예능 프로그램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삼시세끼>는 13%를 훌쩍 뛰어넘으며 tvN 사상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동 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까지 압도하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었다. 물론 시청률 같은 수치가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소소하기 이를 데 없는 콘텐츠가 이토록 우리네 대중문화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도대체 이 프로그램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정서를 건드렸을까.

<삼시세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시골에 내려가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걸 관찰카메라에 담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나영석 PD는 “이건 정말 성패를 모르겠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서진이 강원도 정선에 내려가 첫 방송을 찍으면서 한 말이 “이 프로그램은 망했어”라는 건 그래서 농담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 콘셉트인 프로그램. 그저 세끼 챙겨먹는 일이 예능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웬걸?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소소한 삶을 바라보며 대중들은 반색했다. 프로그램은 강원도 정선이나 만재도 같은 오지 섬에서 별다른 일 없이 밥을 챙겨 먹는 것을 보여주지만, 오히려 화면 바깥의 현실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효과를 발휘했다. 저들이 저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심지어 부러울 지경이라는 건 그걸 보고 있는 우리가 너무나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저들이 밤하늘의 별을 새삼 보고, 빗소리에도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 또는 바닷가에서 잡은 생선이니 조개들이 일일이 손질을 거쳐 맛난 밥상이 되는 경험을 한다는 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런 느낌과 경험을 겪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이제 세상이 아니라 나만의 작은 일상이 됐다. 더 이상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 앞에서 오히려 소소한 삶에 만족하게 된 우리들. 그러니 그 삼시세끼가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고작 삼시세끼 챙겨먹는 일에 그토록 열광한다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 일인가를. 모두가 미생이니 하루를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그리 억울해하지 말라는 메시지의 허전함을. 이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할 판이다. 미생 여러분. 적어도 당신의 삼시세끼는 안녕하신가요?

정덕현 문화평론가 thekian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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