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2일, 유럽중앙은행(ECB) 대규모 양적 완화 발표를 전후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잇따라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ECB 양적 완화 규모가 시장 예상치를 넘어서며 통화완화 분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루마니아, 스위스, 덴마크 등 유럽국가에 이어 싱가포르, 호주가 금리 인하에 나섰고, 중국까지 지급준비율 인하를 단행했다. 최근 두 달 동안 18개 국가에 달한다. 유럽에서 시작된 환율·통화전쟁이 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되며 격화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환율전쟁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환율이 자국 통화와 타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장경제에서 중요한 척도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제시장에서 자국의 수출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환율은 중요 변수이다. 자국 통화를 가급적 약세로 이끌고 가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금리 인하, 지준율 인하 등 통화완화 정책이 시행되면 해당 통화는 시장에 많이 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통화가치는 하락한다. 원·달러 환율 1,000원, 즉 ‘1,000원=1달러’였던 것이 통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1,200원 또는 2,000원=1달러가 된다. 즉, 원화의 가치가 같은 1,000원이라 해도 달러로 환산하면 0.5달러로 하락한다. 그러면 외국인 입장에서는 1,000원짜리 물건을 사기 위해 1달러를 지불했던 것이 0.5달러만 지급하는 것으로 변한다. 즉, 그들에게 우리나라의 물건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것이다. 같은 제품, 품질이라면 좀 더 싼 것을 모두가 원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물건의 가격경쟁력은 향상되고, 해당 기업의 매출과 수익 확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환율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에 한 국가가 통화확대 정책을 펴게 되면 서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환율전쟁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세계 각국의 통화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최근 다른 중앙은행들의 행보에 비하면 매우 매파적인 통화정책이라 하겠다. 이로 인해 원·달러 환율은 하락(즉, 통화가치가 상승했다는 것이다)했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한국 제품의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서 국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은 오히려 약화될 처지이다.
이에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독립성(물가와 경기에 따라서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운용)과 환율의 안정’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줄다리기해야 했다. 지난 2월 17일, 한국은행 소속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독립성을 선택하며 금리동결(2%)을 결정했다. 경기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는 판단과 함께 높은 가계부채 증가율에 대한 우려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중국, 일본 등 통화완화 정책에 나선 국가들과 환율 차이가 더 벌어지게 된다면 한국은행도 통화정책 방향의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빠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와 자산 버블 부담으로 금리인하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왔던 호주도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상황은 예전보다 나쁘지 않다. 국내 물가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에 대한 명분은 강하다. 여타 중앙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저유가 환경은 금리를 더 인하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를 주고 있다. 한국은행도 이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시장의 기대도 이렇게 맞추어져 갈 전망이다.
만약 3월에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선택하지 않거나, 미루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는 원화 강세압력을 높일 것이다. 빠른 원화강세는 다시 한국은행의 정책에 더 강한 압박을 주는 변수이다. 결국 시점이 늦춰질 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다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경민(대신증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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