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동안 기자는 <편집장 칼럼>을 통해 정치는 물론이거니와 대중문화, 기자의 사생활까지 여러 얘기를 가감 없이 풀었다. 시원함과 동시에 아쉬움이 뒤섞인 지금. <편집장 칼럼>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답을 내렸다. 마지막이니만큼 ‘심각하지만 발랄하게’ 이야기를 해 보련다.
  인터넷 신문이 발달하면서 대학언론에 위기가 찾아왔다고들 하지만, 현장에서 뛰어보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클릭 한 번이면 보고 싶은 기사를 볼 수 있으니 많은 이들이 종이 신문보다 인터넷 신문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언론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으니, 이는 다름 아닌 ‘스펙’이다.
  오늘 아침 등교를 하던 기자는 전철에서 일간지를 읽느라 여념이 없는 학생들을 보았다. 다들 빨간 색연필을 손에 들고 줄까지 치면서 열심히 읽고 있었다. 순간, 줄어들 생각 않고 학보함에 쌓여 있는 학보가 떠올랐다.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스펙 쌓기’에서 기본 상식은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따진다면 일간지를 읽는 것만큼 상식을 쌓는데 좋은 방법은 없다.
  2000년 이후, 일간지들은 종종 ‘대학언론’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대학언론, 이대로 좋은가?”라고 묻는다. 그들이 꼬집는 대학언론의 난점(難點)은 학생들이 학보를 외면하는 것보다 학보가 학보답지 않다는 것이다. 학보가 사회적 혹은 문화적 이슈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결코 옳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은 “읽는 이가 무엇을, 왜 필요로 하고, 또 어떻게 그것을 전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학보는 ‘읽는 이’를 ‘학생’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시작한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있다. 학생을 생각하고 만든 학보를 정작 학생들이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기자들이 만든 것이다 보니 어설픈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학보는 ‘학생’ 기자가 만든다. 그러니까, 학보에는 그 또래(같은 세대)가 함께 고민해 볼 문제들과 공유했음직한 상식과 정보가 ‘선정돼’ 녹아 있다. 일간지가 대중을 위한 것이라면, 학보는 그 학교의 구성원만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간지는 ‘대학언론의 존폐위기’를 ‘수다거리’ 삼아 씹고 있고, 학보는 진화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우리 학보도 마찬가지다. 지난 학보가 여전히 수북하게 쌓여 있으나, 보다 신선하고 진중한 기사가 가득한 학보를 만들기 위해 기자들은 고민과 좌절을 거듭 맛보고 있다. 그런데도 그대, 동덕여대생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학보는 등한시하고 일간지‘만’ 읽을 것인가?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