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연 길냥이 사진작가

  모두가 잠든 새벽, 누군가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골목과 골목, 집 사이사이를 다니며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혹은 자신의 밥을 빌어먹기 위해 사람이 없는 캄캄한 거리를 쏘다닌다. 이렇게 돌아다니다 친구를 만나면 반갑게 눈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고된 일로 몸이 지치면 잠시 거리에서 숨을 고르다 또 길을 나선다.


  이 장면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연상할 수 있을까. 인적 없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오늘의 한 끼를 구하는 길고양이나 떠도는 동물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름 아닌 ‘김하연’ 씨의 이야기다. 한겨레신문 봉천지국장이자 길냥이 사진작가인 그를 만나봤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한겨레신문 봉천지국장이면서 신문배달원이면서, 유일한 직원입니다. 또 저는 자기소개를 할 때 ‘허술한 고양이 찍사(찍는 사람) 겸 집사’라는 말을 쓰고요, 가족을 위해 일하는 40대 남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된 딸을 둔 아빠이자 캣맘입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캣대디라는 말을 안 씁니다. 길고양이를 돌볼 때 엄마의 마음으로 돌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요.

신문 배달하는 일을 해서 하루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할 것 같아요
  보통 오전 12시 반에 일어나면 하루가 시작돼요. 일어나면 정신 차린다고 항상 커피를 마시죠. 오토바이로 신문을 배달하고 있어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거든요. 1시에 신문 배달할 준비를 마치면 오전 7시까지 신문 배달을 하고 있어요. 배달하며 길고양이를 찍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딸아이의 초등학교 등교 시간이라 학교로 데려다줍니다. 집으로 돌아와선 잠시 휴식을 취하곤 하죠. 낮 동안 제 할 일을 하고 오후엔 신문 배달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길냥이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왜 길고양이를 찍나요
  결혼하고 1년이 지났을 때였어요. 그때가 2003년도였는데 취미 생활로 블로그를 시작했죠. 블로그를 개설했으니 그 안에 콘텐츠를 채워야 하는데, 게임 전문지 기자 생활을 하고 있던 때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글은 쓰기 싫더라고요. 그러다 혼수로 가져온 카메라를 발견했죠. 그 카메라로 꽃, 하늘을 찍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피사체를 찾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담장에서 고양이가 식빵 굽는 자세(앞발을 품속에 넣고 엎드려 있는 모습. 뒤에서 보면 꼭 식빵과 같은 모양이어서 ‘식빵 자세’라고 일컫는다)를 하고 있는 걸 봤어요. 그걸 카메라에 담았죠. 그리고 사진을 확인해보는데 고양이의 표정이 꼭 사람 같은 거예요. 또 의외로 고양이의 눈빛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사람을 찍을 땐 좀 눈치를 봐야 하거든요. 그런데 고양이는 사진을 찍어도 뭐라 하지 않으니 사람을 찍는 걸 어려워했던 제게 좋은 피사체가 생긴 거죠.
고양이들에게 부모의 모습과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저도 모르게 이입을 하곤 했던 것 같아요. 왜,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잖아요. 자기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자신은 괜찮다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누누이 말씀하시잖아요. 이때부터 점점 고양이의 시선에 맞춰 사진을 찍고, 또 고양이가 바라본 세상과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길고양이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작별’이라는 연작 시리즈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데…
  저는 우리가 사람을 사람으로만 바라보듯이 고양이도 ‘고양이’로만 바라보고 싶었어요. 어떠한 수식을 붙이지 않은 고양이 그대로의 모습을요. 고양이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있어 그들의 죽음까지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은 이렇듯 죽음까지 보여주는 저를 ‘관심종자’가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하더라고요.
고양이는 개체 특성상 죽을 때를 아는 동물이에요. 고양이를 ‘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간은 80%가 손상돼야 우리 몸에서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잖아요. 고양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신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까지 아프다는 티를 내지 않아요. 그러다 죽을 때가 임박하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생을 마감하죠. 이들의 가는 길을 지켜보자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어요. 바로 고양이는 죽을 때 눈을 감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들은 자신이 살았던 거리를 끝까지 눈에 담다가 숨을 거둬요.

길고양이를 찍으며 생긴 자신만의 사진 철학이 있나요
  저는 사진을 찍을 때 정방형으로만 찍어요. 멋진 사진을 찍기 보다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고양이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키는 영역 동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갇혀있는 그들의 세상을 찍고 싶었어요.

9년간의 기록을 사진집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로 펴냈는데요, 책을 출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온라인상에 올린 것은 언젠가 다른 정보에 의해 밀려나기 마련이에요. 검색해서 찾아보지 않는 한 다시 보는 것은 힘들죠. 전시는 임팩트는 있지만 휘발성이 강해요. 보러 오는 사람도 한정돼 있고, 기억 속에서 금방 잊혀져버려요. 그러나 책은 남잖아요. 찾아볼 수 있고 스크랩을 따로 할 필요 없이 정리가 돼 있죠.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책으로 내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삶을 책으로 냄으로써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했어요. 책이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말이에요. (웃음) 그래도 책으로 낼 수 있는 작업은 계속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펀딩을 해서라도요.

책에 실린 사진 중 가장 애착 가는 사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다 모아두고 있지만, 가장 애착 가는 사진은 2장이 있어요. 하나는 우뚱이라는 아이의 사진이에요. 우뚱이는 제가 처음으로 마음을 준 아이기도 해요. 얘가 머리가 진짜 좋은 아인데, 여름엔 더우니까 차 밑으로 들어가서 배기통에 얼굴을 가만히 대고 있더라고요. 그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어서 우뚱이라고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수컷의 삶을 시작할 무렵에는 곁을 잘 안 내주더라고요. 눈만 겨우 마주쳤고요. 그러던 애가 저만 보면 며칠 동안 몸을 막 비볐던 때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그게 마지막 인사였죠. 우뚱이 사진은 아직도 제 프로필 사진이기도 해요.
또 하나는 세운상가 가서 찍은 사진이에요. 그곳은 재개발 공사로 이제 사람이 떠난 곳인데요. 가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물웅덩이에 한 아이가 코를 박고 있더라고요. 죽었나 싶어 다가갔는데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봤어요. 사진을 찍은 뒤 얼른 병원으로 데려갔죠. 수분 섭취를 한동안 하지 못해 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던 상태였어요. 결국 수액을 받고서야 검사를 할 수 있었지만, 검사 결과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수의사가 얼마 못 사는데 편히 보내주자며 안락사를 말했어요. 좋지 않은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고, 이후 잘 갔느냐 물어보지도 못했죠. 사진을 찍어놓고 마음이 아파 보지도 못했어요. 나중엔 미안함을 털어보고자 글을 적기도 했었는데……. 이 두 아이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잊혀지지 않아요.

책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요
  고양이는 사람이 없어야지만 길을 나설 수 있고, 길을 나서야지만 먹이를 구할 수 있고, 살아갈 수가 있어요. 어둠이 내리면 비로소 길고양이들의 시간이죠. 그래서 ‘하루를 견디면 선물처럼 밤이 온다’라고 표현한 거였어요. 또 어떻게 보면 이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되죠. 우리도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밤이라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을 갖잖아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사진에 넣은 글을 봐도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꽤 있어요.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죠.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는 것을 반대하는 여론도 있죠. 캣맘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요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본인의 생각을 내세우면 그들이 수긍해주나요? 어떠한 확고한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제 생각을 강력히 주장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고 또 저도 굳이 그들을 설득하고 싶진 않아요.
  같은 맥락으로, 저는 길고양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보다는, 동물에게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려있는 사람을 위해서 꾸준히 노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심 속 풍경을 살펴보면 길고양이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요. 이 때문에 공존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분이 봐주셨으면 하고요. 그들에게 더디게 다가가더라도 제 사진을 통해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이 시대의 청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면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람을 비롯한 우리 곁에 있는 생물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려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앞으로의 삶에 필요하지 않을까요? 같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 달라 부탁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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