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2014)』 -알랭 드 보통/문학동네-

세월호 참사 1주년을 앞뒀다. 비극적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는 진실을 숨기기 바빴다. 전국민은 그 누군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주인공인 언론은 왜곡된 사실을 연속적으로 방영함으로써 많은 사람을 속였다. 이로써 뉴스는 국민에게 신뢰를 잃었고 기자는 ‘쓰레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국민은 왜 보이는 것 그대로를 믿게 된 걸까. TV는 속된 말대로 ‘바보로 만드는 상자’인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인류가 뉴스의 힘에 지배당하는 이유에 관해 말한다. 인간은 공포심이라는 감정에 의해 쉽게 무너진다.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 테러 등이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의 성격은 그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한다. 사고 현장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뉴스에 나올만한’ 특별한 사건이 뉴스를 시청함으로써 자신에게 비일비재한 일로 둔갑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대중이 이처럼 이성 없이 뉴스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를 파악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 관해 공부하지 않으면 그에 관한 평가를 할 수 없듯, 이 또한 마찬가지다. 저자는 언론에 관한 구도자적 자세를 촉구한다. 대중이 자의식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뉴스가 가진 성질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첫째로, 뉴스는 아주 좁은 맥락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국가 복지 예산안 편성과 세금 인상에 관한 주제가 보도됐다. 이때 두 개의 기사는 각 사건이 왜 중요하며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나타낸다. 하지만 연관될 수 있는 두 기사를 뉴스는 큰 범위에서 다뤄주지 않는다. 이로써 시청자는 두 주제를 끊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은 사건에 대한 이해를 떨어뜨린다. “혼란스런 우주 속에 던져진 듯한 무상함을 느낀” 대중은 방향을 찾지 못해 이내 뉴스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만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의제 설정(Agenda Setting)’에 기인한다. 의제 설정은 뉴스의 기삿거리를 선택하고 순서를 정하는 것을 뜻한다. 뉴스는 국장의 지극히 주관적인 우선순위를 통해 전해지는데, 그 특성이 나아가 자국민의 정치의식을 훼방 놓기도 한다. 의제를 계속 바꿈으로써 정치 사안에 관한 깊은 고찰을 어렵게 하고, TV 속 일이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또한, 이는 사건의 진실을 단편적으로만 보이게 한다. 여러 가지 입장이 있다면 뉴스는 그 중 선택적인 의견만 보도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때 국장의 선택 기준이 국가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언론은 권력자의 치부를 공개할 때 ‘꼬투리 잡기식’ 저널리즘에 빠질 수 있다.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 중 하나인 사회 병폐를 공개하는 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희열감을 느끼게 한다. 부조리를 잡아냄으로써 대중에게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악당을 잡아내는 것에 몰입하다보면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이 세상을 병들게 하는 자를 간과할 수 있다. 저자는 뉴스가 정신건강, 건축, 여가, 남녀 관계에서의 예절 등 ‘전방위적’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치 외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것을 무시한다면 앞으로의 역량을 키워나갈 수 없다. 현재의 잘못을 발견한 것에 그치는 것이다.

셋째로, 뉴스는 ‘모든’ 대중이 몰입할 만큼 호소력 있게 소식을 전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시청자는 한 나라에 일어난 테러가 ‘비일상적인’, 흥미로운 기삿거리인지 알지 못한다. 뉴스는 그 나라의 ‘일상적인 사건’은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많은 사람이 깊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이 뉴스의 한계다. 현대의 언론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확성을 떨어뜨리고 허구를 섞기도 한다. 저자는 일반적인 삶에 주목하는 뉴스를 만듦으로써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페루에서의 사랑, 아디스아바바의 거리 파티에 관해서도 알게 되면 대중은 이례적인, 특수한 상황까지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뉴스는 어떤 학문 못지않은 깊이를 갖고 있다.『뉴스의 시대』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널리즘을 경계하고 끊임없이 탐구할 것을 상기시킨다. 언론은 대중의 감시를 받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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