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프랑스 어원에서 나온 단어다. ‘고귀한 신분’과 ‘책임이 있다’가 합쳐진 말로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귀족의 의무를 일컬었다. 흔히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수준 높은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상류층의 의무인 동시에 명예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동서고금을 떠나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서 이어져 내려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세계적인 억만장자 워렌 버핏은 재산 중 무려 375억 달러(약 41조 원) 상당을 사회에 기부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해리 왕자는 2차례 이상 아프간 전쟁에 자원 참전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남을 내려다보고, 의무를 피하기보다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외국의 상류층이 국민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아닌 고마운 이웃이라는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국내 일부의 재벌가와 고위 공직자는 법을 교묘히 피해 나간다. 그래서 국민의 4대 의무에 포함된 납세와 국방의 의무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얼마전 정부가 실시한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국회의원의 37%가 부모와 자녀의 재산공개를 거부해 대중들의 비난을 샀다.

여기에 최근 ‘갑질’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기업 경영진의 여러 가지 횡포와 백화점 모녀사건처럼 갑질 횡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잘나갈수록 자신을 과시하고 남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자리 잡은 셈이다.

현대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은 더욱 확장돼 가진 것을 나누고 협력하는 공존의 자세라는 뜻까지 포함한다. 더 이상 기업가와 권력자에게만 해당되는 의무가 아니다. 갑질 횡포의 주체는 고위 공직자뿐만 아니라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 사회에서 약한 자를 향한 차별이 기업과 정치권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옛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갑의 위치에 있을수록 자신은 을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비판과 반성을 해야 하며 타인에게는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지나친 경쟁에서 벗어나 내가 남보다 무언가를 더 가졌으면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함께 나누는 자세가 오늘날 필요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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