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잡티 없는 깨끗한 피부를 위해 돈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게다가 자신을 좀 더 빛나게 해 줄 화장기술을 배우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많은 여성들이 눈이 또렷해 보이도록 아이라인을 그리고 잡티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과 컨실러를 사용한다. 이렇게 현대에는 다양한 미용법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연 고대에는 어떤 미용법이 있었을까?
고대에도 흰 피부를 위한 노력은 있었다. 고조선 때 만주지방에 살던 부족은 겨울에 ‘돈고(豚膏)’라는 돼지기름을 발랐는데, 이 돼지기름은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예방하고 피부를 희고 부드럽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다. 후에도 흰 피부를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기원전 2200년경 중국의 하(夏)나라에서 처음으로 분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이전부터 사용됐을 것이라 추정한다. 분은 쌀가루를 서속(기장과 조)과 3:2로 배합해 만들고 분꽃씨, 조개껍질, 활석, 백토 등으로도 만들어 사용했다. 이러한 분은 구하기 쉬운 반면에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얼굴에 쉽게 밀착되지 않아 분을 바르기 전 솜털을 다 뽑아내야 했고, 접시에 담아 물과 섞어 바르면 20분 정도 누워 있어야 했다.
위의 화장법이 피부를 희게 했다면 붉은 색을 내는 화장법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연지다. 연지는 볼과 입술을 붉게 칠하는 화장을 말한다. 이마에 동그랗게 칠하는 것은 곤지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연지에 속한다. 연지 화장의 최초 기록은 기원전 1150년경 중국의 은나라 주왕 때부터이며 우리나라는 확실치 않으나 신라의 여인들이 연지화장을 했다고 전해진다. 샤머니즘 문화권에서는 주색금기(朱色禁忌)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고 중국에서는 후궁이 생리 중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뜻으로 볼에 연지를, 단오 때에는 비녀 끝에 연지를 발라 재액을 물리쳤으며 산간지방에서는 전염병의 예방으로, 신부의 볼에 사용되는 것은 젊음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눈썹을 그리는 것 또한 중요시 했는데, 눈썹과 속눈썹에 바르는 화장품은 검은색의 안료인 마묵을 사용했다. 신라시대나 고구려 벽화 속 인물들의 눈썹이 가지런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미(美)란 외모가 아니라 그 안에 잠재된 인격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외면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에 공을 들이는 만큼 내적인 아름다움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오세미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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