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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무서운 셰어하우스 앞 '터무늬있는집 9호' 팻말이다

  강북구 솔샘로의 한 골목길 사이로 언덕을 오르면 ‘터무늬있는집 9호’ 팻말과 함께 평범하지만 아늑해 보이는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도착한 곳은 바로 과거 은둔을 경험한 활동가(이하 은둔 고수)와 은둔 청년이 함께 거주하는 ‘안 무서운 셰어하우스(이하 셰어하우스)’다. 이곳에서 유승규 대표를 포함해 총 9명의 청년은 공동으로 생활하며 은둔의 아픔을 덜어내고 있다. 셰어하우스를 총괄하는 ㈜안무서운회사는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사태로 결국 폐업을 택한 사회적 기관 ‘K2 인터내셔널 코리아’ 출신 은둔 청년 4인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은둔 청년에게 생활 거주 공간뿐만 아니라 △은둔 고수 양성 프로그램 △언론사 인터뷰 △콘텐츠 제작 참여 등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제공해 은둔도 스펙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웃음, 그들에겐 기적에 가까운 
  지난 14일, 기자는 청년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직접 셰어하우스에 방문했다. 유 대표는 건물 입구에서부터 기자를 친근히 맞이했다. 그의 안내를 따라 1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최근까지 은둔생활을 보내다가 올해 4월 3일부터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3명의 은둔 청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유 대표는 “입주자들이 이곳으로 오기 전과 비교해 웃음이 많아졌다”며 운을 뗐다. 줄곧 수줍어했던 A 씨(20대 초반·남)와 긴장한 B 씨(20대 초반·남), 그리고 매우 덤덤했던 C 씨(30대 중반·남)까지. 각자의 얼굴엔 웃음이 스며있었다. 어떻게 그들은 한 달을 조금 넘긴 시간만으로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걸까.


  그들의 일상이 궁금해지던 찰나, 유 대표가 셰어하우스의 하루를 소개했다. 청년들은 상쾌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오전 9시에 일어나 방을 청소한다. 그리고 10시 30분부터 셰어하우스 옆 북서울꿈의숲을 거닌다. 점심 식사 전에는 ‘서로의 기분을 점수로 표현하기’ 과정을 거친다. 이는 청년들이 서로의 표정과 행동을 분석해 그날의 기분을 예측하고 해당 점수에 대한 이유까지 작성해보는 활동이다.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마라톤 △복싱 △배드민턴 △탁구와 같은 운동 종목을 배우거나 청년들끼리 서로의 본가에 방문하기도 한다. 밤이 되면 각 방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일과를 마무리 짓는다. 유 대표는 입주자들이 최근 한 달간 이와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창의성은 물론 표현력 또한 늘었다”고 전했다.

 

틀에 박힌 시각을 거둘 차례
  여전히 한국 사회는 히키코모리를 은둔을 ‘자처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지난 2022년 한국청소년학회에서 연구한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특성 및 은둔 경험 분석’에 의하면 그들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부모는 ‘자녀의 내향적인 성향’을 은둔의 주요 원인으로 여겼다. 그러나 청년들은 은둔을 지속하는 주요 이유로 ‘당사자는 노력했으나 소용없었고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점’을 답했다. 더불어, 지난 1월 서울시에서 발표한 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이 은둔·고립을 겪는 원인은 △실직 또는 취업에 어려움(45.5%)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움(40.3%) △학교 및 사회생활이 어려움(30.7%) 등으로 외부 환경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결코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은둔에 처한, 도움이 절실한 이들이다. 유 대표는 “실제로 셰어하우스 내 입주 선발 제한 인원인 7명을 훨씬 넘어 35명가량이 지원했다”며 “누구보다 자신이 회복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당사자들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등의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날, 어느 청년들의 이야기
  이처럼 벽돌색으로 칠해진 셰어하우스 지붕 아래에는 집 대문을 박차고 나온 다양한 은둔형 외톨이들이 살고 있다. 지난달까지 집에서 은둔생활을 이어가다 쉽지 않은 결심과 함께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세 청년을 소개한다. 세상이 두려워 어딘가에 자신을 감춘 채 살고 있을 은둔형 외톨이에게 그들이 희망처럼 여겨지길 바란다.

① A 씨 이야기
  A 씨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 밖에서 방황했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부터 10년이 넘도록 집에서 은둔생활을 이어 나갔다. 인터뷰 도중 그는 자신의 과거 시절을 들추기 힘든 듯 잠시 머뭇거렸다. 침묵 끝에 A 씨는 자신이 “외부로부터 육체적·정신적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약육강식의 환경 속에 살아가야 했기에 인간관계를 맺는 것조차 두려워지고 점차 세상과 멀어지게 됐다”며 자신이 은둔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정신적 상태가 매우 안 좋아져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으로까지 자신을 몰아갔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그는 “미래에 나아갈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었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삶에 대한 의지란 구체적이고 거대한 게 아니었다. 내일도 그다음 날도 그저 좋아하는 걸 계속 이어가고 싶을 뿐이다. 그는 평소 독일의 갱스터랩 뮤비 시청하기를 즐겼다. 일명 ‘좋아하는 것을 하기’는 그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은둔 시절과 비슷하게 현재의 그는 셰어하우스 인근의 북서울꿈의숲에서 산책하거나 입주자들과 함께 탁구를 치는 등 더욱더 활동적인 취미를 쌓아가는 중이다.

 

② B 씨 이야기 
  “수동적인 삶보다 ‘나’를 알아가려는 절박함을 찾고 싶었어요.” B 씨는 정신적으로 어딘가 아팠지만, 정확한 원인을 몰랐다.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안주하며 은둔생활을 보내온 그는 자신의 아픔이 점차 가족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바깥세상으로 나섰다. 그렇게 셰어하우스 생활이 시작됐다. 셰어하우스는 마냥 편안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는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을 뿐더러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집단이기에 자주 다툼이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한 공간에서 오랜 기간 함께 지내기 위해 소통으로 갈등을 해결해야 했다. 유 대표는 “어쩌면 셰어하우스는 은둔 청년들에게 싸움의 장과 같다”며 갈등을 빚고 다시금 소통을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 성장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③ C 씨 이야기
  과거 C 씨는 약 6개월 간격으로 학교나 직장에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며 밤낮이 바뀐 채로 은둔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도중 그는 K2 인터내셔널 코리아로부터 지원받아 은둔 고수로 활동할 기회가 생겼다. 덕분에 은둔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전례 없는 코로나의 여파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립에 처했다. 줄곧 활동가로서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던 C 씨는 은둔형 외톨이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셰어하우스에 입주했다.


  평소 셰어하우스의 불투명한 반찬통은 불만을 야기하는 주범이었다. 많은 청년이 통 안에 담긴 반찬을 볼 수 없어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를 본 C 씨는 번거롭더라도 모든 반찬통에 어떤 음식이 들어있는지 이름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귀여운 선행 덕분에 반찬을 구분할 수 있게 되자 청년들은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당시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그렇게 C 씨는 은둔 고수라는 직업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앞으로 그는 안무서운회사 내에 마련된 은둔 고수를 양성하는 ‘피어 서포터즈’ 프로그램 중 새롭게 개설될 소규모 심화 과정을 추가로 이수해 활동가로서 필요한 능력을 함양시킬 예정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지원사업
  지난 4월, 서울시는 서울시에 거주하고 고립·은둔 상황에 있는 청년 500명을 위한 ‘2023년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을 발표했다. 본 사업은 △고립·은둔 청년 발굴 및 홍보 △청년 맞춤형 관리 및 유형별 맞춤 지원 △고립·은둔 청년 통합지원체계 구축 및 지역 기반 조성으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이다. 해당 사업을 주관하는 청년이음센터 김성주 팀장은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들이 고립·은둔을 벗어나 회복의 기회 매개를 제공하고 고립·은둔 청년이 사회와 소통하며 사회복귀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며 따듯한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처럼 서울시는 고립·은둔 청년의 아픔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개인·가정·집단 나아가 사회 전체가 은둔형 외톨이들을 ‘기다려 줄 수 있는’ 태도로 바라보게 되는 그 순간, 그들은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효주 기자 hyoju02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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