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원 대표 백경희

  본교 후문의 여러 가게들 사이, 조그마하지만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한 식당이 있다. 노란빛으로 물들인 건물과 파릇파릇한 초록빛을 머금은 식물들. 덕분에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이곳은 학우들에게 ‘맛집’이라 소문난 국수집, ‘초계원’이다. 오늘도 초계원에서는 국수를 삶는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백경희이고 59년생, 64살이에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야간을 나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가 10년 만에 졸업했어요. 그리고 공무원 중 국비 유학생으로 뽑혀서 나이 마흔에 영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석사학위를 땄어요. 그게 제 최종학력이에요. 남편과 아들 하나가 있어요.

 

초계원은 어떤 공간인가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대접함으로써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이곳을 가꿔왔어요. 요즘 꽃 보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매장 곳곳에 식물로 예쁘게 꾸며둔 거예요. 우선 손님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고, 이차적으로는 번 돈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한다. 이 목적으로 여기를 만들었습니다.

 

‘초계원’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풀 초(草), 시내 계(溪), 동산 원(園)이에요. 시편 구약성경 23편 2절에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로 인도하신다’는 표현이 있어요. 하나님을 목자로, 우리를 양으로 비유해서 양인 우리를 하나님이 푸른 풀밭과 맑은 물이 흐르는 동산으로 인도하는 거죠. 저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것을 손님들한테 제공하겠다는 뜻을 지향해서 작명했어요. 특허청에 초계원을 상표 등록 신청을 해놨는데 최근에 등록 결정이 났어요. 이제 등록 절차에 들어가요.

 

초계원을 운영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정년퇴직하고 농가에서 꽃을 기르면서 살다가 문득 나태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비록 60세지만, 아직 뭔가를 재생산할 힘이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퇴직금을 목돈 삼아 돈을 벌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공무원으로 일하고, 국비 유학생으로 해외에 가게 된 것도 다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은 거잖아요. ‘내가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자’는 마음으로 노는 것을 청산했죠.

 

고기국수만 취급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원래 고기국수를 좋아해요. 또 하나는, 공무원 재직 중에 어떤 시사 잡지를 본 적이 있어요. 일본의 어느 유명 대학교 근처에 한 노부부가 우동에 돼지고기를 수북이 얹어 판매하면서 오랫동안 대학생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제공했다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읽고 ‘이런 멋진 삶을 사는 부부가 있네. 나도 정년퇴직하면 이런 거 한번 해봐야겠다’ 하고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가졌죠. 그런데 그 꿈이 지금 실현된 거예요. 소싯적에 생각하던 것을 다 하고 있어 너무 만족해요.

 

레시피는 직접 구상하신 건가요
  네, 가게를 계약해 놓고 그때부터 메뉴 개발에 온 힘을 다했어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죠. 사람들한테 충분한 영양과 포만감을 주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밀가루보다는 소화가 잘되는 쌀을 이용하고, 멸치육수보다는 고기육수를 쓰고, 다양한 채소도 들어가야 먹는 사람에게 보다 종합적인 영양소와 든든함을 줄 수 있지 않겠어요? 이제 더 이상 메뉴 개발에 뜻은 없어요. 주메뉴 세 가지로도 충분하다고 보거든요.

 

학생들 입맛을 고려해 특별히 노력하신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고기를 어떻게 써는 게 좋을지 오는 사람마다 의견을 물어봤어요. 나이 드신 분들은 고기를 넓적하고 크게 썬 것을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딱 집어서 국수에 말아 한입에 톡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고객의 대부분은 학생이다’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학생들의 취향에 맞췄죠.

 

작년 9월, 동덕여대에 발전기금 장학금 1천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신 기부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에 가게를 열었을 때 손님들을 기쁘게 만들기로 했잖아요. 맛으로 봉사하는 것도 있었지만 돈을 벌면 이것을 의미 있는 곳에 쓰기로 했었어요.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건 학생들이었고요. 그리고 저 또한 젊은 시절에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서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

 

초계원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을 소개해 주세요
  너무 많아요. ‘사장님 망하지 말고 잘 운영해 주세요’, 이런 얘기를 해주는 학생도 있고요. 제가 네이버 지도에 가게를 잘못 표시했는데 학교 커뮤니티에 올바른 주소를 올려준 조교님도 있어요. 테이블 배치를 도와준 학생도 있고, 가게에 대한 후기를 처음으로 블로그에 남겨준 학생도 기억나요. 또, 작년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가게에 드나들기 시작한 미대생 4학년이 있었어요. 나중에 제가 학생의 졸업 작품 전시회까지 갔었죠. 당시에 학생이 고기국수랑 비빔국수 중에 고민하다가도 매번 고기국수만 먹었어요. 근데 전시를 끝내고 난 다음부터 비빔국수를 먹더라고요. 얼마나 홀가분할지, 그 학생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너무 기뻐요.

 

앞으로의 계획과 최종 목표가 궁금합니다
  제가 손님들에게 미안한 게 가게가 너무 좁아요. 앞은 바로 도로라 대기도 못 하다 보니 학기 중에는 학생들이 그냥 왔다가 돌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먹다 보면 좁아서 불편을 끼치는 부분도 있고요. 그래서 여유가 되면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상고 주간도 아닌 야간을 다녔어요. 이미 그 자체부터 ‘잘 될 가능성이 적은 애’로 출발했죠. 대학도 통신대를 나와서 10년 만에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유학도 국비로 다녀오는 좋은 기회를 얻었어요.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나름대로 잘 겪은 사람이잖아요. 학생들에게 제 삶이 본보기가 되길 원해요.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에 비해 힘든 일이 더 많더라고요. 그렇지만 ‘좌절 금지’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노력한 만큼 안 되면 돌아가면 되는 거예요. 제가 안 돼서 돌아간 게 너무 많거든요. 저는 타자 급수를 못 따서 공무원이 됐어요. 만약 급수를 땄으면 그냥 일반 회사에 갔을 거예요. 하지만 무급이라 학교의 도움도 없었고, 그래서 혼자 살 길을 찾은 거예요. 그러니까 뭔가 안 되면 반대편에 더 좋은 길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대안을 찾아가 봐요. 우리 학생들이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품어서 멋지게 자기 삶을 한 걸음씩 만들어 나가는 게 제 바람이에요.

김다연 기자 redbo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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