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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을 앞두고, 기자 생활의 시작을 곰곰이 되짚어 봤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더군요. 나서기를 좋아하는 제게 담임선생님께서는 한 가지 활동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당시 정부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집했던 어린이 기자단이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저는 나름대로 소박한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제 인생 첫 취재원은 경찰관이었습니다. 아빠의 손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찰서 문을 열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경찰관 선생님께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뜻밖의
퇴임사
김한비 기자
2023.12.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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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판 이틀 전, 조급한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후회 없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많이 늦었네요. 언제나 그랬듯 조판 날까지도 ‘왜 이런 글을 썼지’ 하고 자책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셨던 당신의 좌우명을 떠올려 봅니다. ‘후회하지 말자.’ 초등학생 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에는 매번 이 여섯 글자를 적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옮겨 적기만 했을 뿐, 후회하지 않을 용기가 없어 지킨 적은 많이 없네요. 이번에도 어기게 될까 봐 걱정될 따름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우리 학보사.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뇌리를 스
퇴임사
최보영 기자
2023.12.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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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봄, 기자가 되겠다는 말을 당당히 외치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철모르는 어린아이처럼요. 아마 중학생 때 했던 도서부, 고등학생 시절의 교지편집부 정도로 여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학생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은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의 결정이 틀렸다는 생각만 선명해졌습니다. 학보사 생활은 만만치 않은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곳은 글쓰기 실력만큼 중요한 게 많았습니다. 대학 언론 기구로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더불어 기사 끝에 들어가는
퇴임사
송영은 기자
2023.12.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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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소개할 사연은 서울특별시 장위동에 거주 중인 23살 김수인 양께서 보내주셨습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동덕여대 컴퓨터학과에 재학 중인 김수인입니다. 제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대학 입학 후 3년간 몸담았던 학보사에서 퇴임하게 됐는데요. 임기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99%의 시원함과 1%의 섭섭함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마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려 사연을 적어 보냅니다.처음 제가 학보사에 들어온 계기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신입생이었던 저는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언론에 큰 관심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
퇴임사
김수인 기자
2023.12.0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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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동덕여대 학보사 장서율 기자입니다.’ 2020년 9월, 동덕여대 학보사에 들어오면서부터 생긴 언어 습관입니다. 수습기자 때는 내가 가진 직함이, 그리고 멋진 단체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정기자 때는 기사와 관련한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데스크단이 돼선 이 말이 입에 붙어서. 정말 다양한 이유로 지난 3년간 이 말이 입을 떠나지 않았네요. 이외에도 학보사를 하면서 많은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기사의 형식에 맞는지, 괜찮은 표현인지 수도 없이 고민하고 썼다 지웠다 했는데요. 가령 되었다를 됐다로
퇴임사
장서율 기자
2022.11.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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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로 운을 떼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2020년 선선한 가을에 60기 수습기자로 들어와 어느덧 2022년의 차가운 겨울 앞에서 퇴임사를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더디게 흐른 줄 알았는데 이리 생각해보니 빠르게 흘렀네요. 제게 퇴임이란 참 멀게만 느껴지던 존재라 오지 않을 줄만 알았습니다. 쓰고 있는 와중에도 실감이 나질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오히려 덤덤한 마음입니다. 학보 홈페이지에 제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따로 검색해서 본 적은 드문데 마지막이라 안 하던 짓을 해보고 싶은 장난꾸러기 심리가
퇴임사
이주은 기자
2022.11.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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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매번 서론을 고심하며 작성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 문장을 삼일에 걸쳐 완성한 적도 여럿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학생 기자로서의 마지막 글을 담아보려 합니다. 사실 퇴임사를 쓰는 지금에도 아직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합니다. 학보사 활동은 대학 생활의 전부였다고 할 수있을 만큼 제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너는 매일 가는 곳이 학보사실”이라며 여기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던 모든 순간
퇴임사
장수빈 기자
2022.11.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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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의 나’를 기록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안고 학보사에 지원했습니다. 거창한 목표도 남다른 포부도 없었습니다. 그저 훗날 스치듯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선택한 곳에서 어느덧 마지막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왠지 모르게 가슴의 울렁거림이 커져만 갑니다. 학보사라는 이름 아래 머문 흔적은 그 무엇 하나 빛나지 않았던 것이 없었습니다. 원하던 아이템이 기사화되던 날, 마감일을 앞두고 원고를 갑자기 뒤엎던 날, 기나긴 조판을 끝내고 어둑한 하늘을 바라보던 날 모두 제 기억 속에서 뚜렷하기만 합
퇴임사
최유진 기자
2022.11.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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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노트북 앞에서 몇 번을 다짐했습니다. 담백하게 쓰자고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칫 너무도 감정적인 글이 돼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시작이 더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잘 쓰고 싶다는 욕심만 앞서네요. 기쁜 마음에 술술 쓸 줄 알았던 퇴임사도 여전히 똑같이 헤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학보사의 기자로, 더 나아가 편집장으로 생활하는 일은 늘 헤맴의 연속이었습니다. 낯선 사람과 부딪히며 정보를 얻어내는 일, 중심을 갖고 조리 있게 글을 써 내려
퇴임사
전감비 기자
2022.11.2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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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저는 동덕여대학보사 59기 19학번 김가희입니다. 대학사회부 정기자를 거쳐 문화부장을 맡았고, 지금은 퇴임사를 쓰고 있습니다. 퇴임사를 왜 인터뷰 형식으로? 오래 전부터 ‘내가 퇴임사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임사는 정말 멋진 글을 써야 할 거 같은데, 그러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가볍지만, 기억에 남는 퇴임사를 쓰고 싶어 인터뷰 형식으로 적게 됐습니다. 학보사에는 왜 들어갔나? 고등학생 때 꿈이 기자였습니다. 경영학과에 진학하면서 기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지만요. 그렇게 새내기가 됐는데 기자에
퇴임사
김가희 기자
2021.11.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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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수업 이외에 특별한 활동 없이 침대 위에서 하루를 보내는 스스로가 갑작스레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찬란하다는 대학 생활을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생겼고, 바쁘게 대학 생활을 보내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에 학보사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하면서, 만약 학보사에 붙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2년 반이 흐른 지금, 저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 퇴임사를 쓰고 있습니다.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쌓은 추억이 너무나도 많지만, 퇴임사를 쓰는
퇴임사
정채원 기자
2020.11.3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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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보를 읽지 않는 학우들이 많아진 것 같아 우울해하던 저에게 친오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 학생들이 기사 좀 안 보면 어때? 학보사에서 네가 배운 게 많았잖아. 그거면 됐지.” 퇴임을 앞둔 저를 생각해서 한 위로였지만, 제 입에서는 “아니. 절대 아니야”라는, 저조차도 놀랄 만큼 단호한 대답이 튀어나왔습니다. 기자라는 역할과 의무의 무게가 제게 매우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던 순간이었습니다.어느새 저는 독자들이 왜 신문을 읽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내 기사를 많이 읽을까를 고민하고 스트레스받
퇴임사
이지은 기자
2017.12.0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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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기자의 주관을 담는 고함이라는 기사를 쓸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장애인 인권에 관심 두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럽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던 터라 여느 때보다 신중을 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혹시나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기사가 되지 않도록 구성을 되짚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안녕함을 가로막는 장벽 너머의 사람에게’라는 제목의 글이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학보를 발행한 후에도 예시로 들었던 과거의 경험이 본 주제를 말하는 데 적절했는가에 대한 의심을 쉽사리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목말라 했던 피드백도 이때만큼은
퇴임사
문아영 기자
2017.12.05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