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친구 수빈이에게.


  냥숩~ 잘 지내? 나 지현이야.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불렀을 네 이름이 이젠 왜 이리 부르기 어려운 걸까. 수빈아, 잘 지내고 있어? 요즘 날씨가 정말 덥고 습해졌는데, 너는 그곳에서 덥지는 않은지,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는지… 너의 하루가 참 궁금해.


  너를 비대면 수업에서 처음 봤던 그때가 떠올라. 새하얀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망울, 귀여운 목소리, 그리고 항상 학교생활에 열정적이던 네 모습까지. 늘 당차게 “교수님~” 하며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는 네가 참 멋있어 보였어. 그러다가 모두피움 활동에서 실제로 만나게 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빠르게 가까워졌지. 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좋았어. 어느덧 3학년이 돼 종종 힘들어하는 나에게 “이만하면 된 거야”라며 묵묵히 위로를 건네던 네 표정, 몸짓 하나하나 모든 게 생생해.

 

노란 꽃잎처럼 내 맘에
  지난 6월 교내 트럭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재학생 故양수빈(아동 21) 씨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수신인은 양 씨와 아동학과 동기이자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던 권지현(아동 21) 씨다. 동기로만 알고 지내던 둘은 우연히 같은 학기에 문헌정보학과로의 복수전공을 택했다. 이를 계기로 그들은 서로에게 큰 힘이 돼 주며 점차 각별한 관계로 발전했다. 모험심이 뛰어난 그들은 자격증을 함께 준비하고 워킹홀리데이(이하 워홀)를 꿈꾸는 등 새로운 도전을 즐겼다.


  권 씨는 양 씨를 ‘민들레’로 표현했다. 양 씨가 가진 긍정의 힘은 민들레가 씨앗을 흩뿌리며 새 생명을 틔우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힘들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전하던 양 씨 덕에 권 씨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피곤한 1교시 등굣길에도 “Hi~” 하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던 모습을 권 씨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양 씨는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와 예능 <무한도전>을 즐겨보곤 했다. 그래서 권 씨가 그에게 일상을 물을 때면 매번 동영상을 시청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루는 다이어트를 위해선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며 큰 물병을 챙겨왔지만, 결국엔 자연스럽게 월곡 맛집으로 향하기도 했다. 특별하진 않지만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던 그들, 방학을 맞으면 꼭 한 번 술을 마시자던 약속은 이룰 수 없는 소망이 됐다.

 

나는 너를 보고 싶어요
  처음 너의 사고 소식을 접했을 땐 그저 믿기지 않았어. 20분 전까지만 해도 수업 자료를 인쇄해 오겠다는 문자를 보냈기에, ‘지하철을 놓쳤나?’, ‘프린터기에 문제가 생겼나?’ 하는 생각으로 널 기다렸어. 하지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에 1교시 수업 내내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사고를 목격한 학우에게 사고 난 학우의 인상착의를 물어보고 계속해서 네게 연락을 취했어. 나는 그 순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고 후회해. ‘그때 수빈이에게 가파른 언덕 말고 대학원 건물 쪽으로 등교하라고 말했더라면, 등굣길에 전화 한 통이라도 걸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야.

사고 당일, 그들이 함께 듣는 문헌정보학과 1교시 전공 수업에선 권 씨의 발표가 예정돼 있었다. 한편 양 씨는 타 수업의 과제물을 인쇄하기 위해 일찍이 학교로 향했고, 권 씨는 그런 양 씨를 강의실에서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수업이 시작됐음에도 양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연락을 취한 결과, 전화를 받은 교직원이 양 씨의 사고 소식을 전했고 결국 6월 7일 오후 7시 20분경 양 씨는 세상을 떠났다.


  양 씨의 회복을 간절히 기도한 것은 권 씨뿐만이 아니었다. 양 씨가 튜터링 프로그램에서 멘토 역할을 맡아 근무하던 다솔지역아동센터(이하 다솔)에서도 양 씨의 친언니로부터 사고 소식을 들은 후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기다렸다. 그러나 며칠 뒤 뉴스를 통해 사망 소식을 접했고, 장례식장에 방문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다솔에 근무하는 조은진 선생님은 양 씨를 이렇게 추억했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밝은 친구였어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놀리면 반응이 재미있었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았습니다. 수빈 쌤도 아이들을 예뻐했고요.”


  담당하던 학생 모두가 입을 모아 ‘친구 같은 선생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밝고 친근한 매력을 발산하던 그는 이제 학생들에게 ‘보고 싶은 사람’이 됐다. 다솔에 다니는 김인하(17·남) 학생은 “멘토링의 틀에서 벗어나 저희와 재밌게 놀아 주시고,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시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구윤지(19·여) 학생은 다솔에서 다 같이 에버랜드에 간 날을 잊지 못한다며, 양 씨가 놀이기구를 타며 밝게 웃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양 씨의 부고를 들은 아이들은 “거짓말이죠?”라고 되물으며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인하 학생은 “모두가 저한테 깜짝 카메라를 하는 줄 알았고 너무 놀라서 눈물도 안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다음 날 다 같이 방문한 본교 추모 공간에는 국화꽃 여러 송이와 추모의 마음이 담긴 포스트잇이 놓여있었다. 그제야 사실임을 체감한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긴 시간 애도했다.

 

(사진제공=조은진 선생님)
(사진제공=조은진 선생님)

  이에 다솔 내부에서도 자체적인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집단 미술 프로그램과 심리 상담을 담당하는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선생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아이들은 종이로 작은 국화꽃을 만들고, 편지를 작성해 붙이며 양 씨가 편히 쉬길 기도했다. 김인하 학생은 “아직 수빈 선생님의 빈자리가 크기도 하고, 더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만들게 됐다”며 “마냥 슬퍼하기보단 좋은 추억들을 잘 간직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편한 미소를 지어주세요
  사고가 발생한 지난 6월 5일부터 故양수빈 씨가 사망한 7일까지, 이틀이 넘는 기간 동안 본교의 대처는 미숙했다. 양 씨가 사망에 이르던 시각 짧은 입장문만을 게시한 학교 측에 재학생들은 크게 분노했다. 이에 제56대 총학생회 ‘파동’에서는 6월 12일 故양수빈 학우 추모 촛불 집회를 주최했고, 그다음 날부터 두 번째 촛불 집회를 통해 총장과의 합의문을 작성한 7월 7일까지 본관 점거를 했다. 본관 점거의 목표는 ‘총장 사퇴’였다. 그러나 학교는 본관을 뒤덮은 수많은 포스트잇과 일상을 포기하며 본관에 머무르는 학생들의 바람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외면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치지 않고 우리의 의견을 외치는 일이었다.

  세상이 너무 야속하게도, 뜻대로 흐르지 않는 순간들이 많더라.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촛불 집회, 본관 점거, 인터뷰밖에 없어서 속상하고 슬펐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기거나 네가 보고 싶어도 추모 공간에 가서 메시지를 남겨두는 일밖에 하지 못했는데, 그마저도 자주 가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해.


  앞으로도 종종 너의 부재를 깨닫고 눈물을 흘릴 것 같아. 그래도 너무 속상해하지 마. 네가 내 생일날, “슬플 땐 마음껏 울어도 돼”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냥 ‘아 저 바보, 또 우네’ 하고 씩 웃으며 지켜봐 주라. 그럼 나도 이렇게 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슬픈 마음을 천천히 곱씹고, 느끼고, 삼키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네가 남기고 간 사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게.

 

△故양수빈 학우의 오랜 흔적이 담긴 MEMORY BOOK이다 (사진제공=아동학과 학생회 Ondo)
△故양수빈 씨의 오랜 흔적이 담긴 MEMORY BOOK이다 (사진제공=아동학과 학생회 Ondo)

 

  7월 8일, 제36대 아동학과 학생회 ‘Ondo’(이하 온도)는 故양수빈 씨의 안녕을 기리기 위한 클로징 세레모니를 진행했다. 아동학과 교수진을 비롯한 학우, 총학생회 부원들이 자리했으며 양 씨의 유가족도 참석했다. 이들은 양 씨의 빛나는 순간들이 담긴 ‘MEMORY VIDEO’를 시청한 뒤, 아동학과 추모 공간에 놓인 편지와 꽃, 그리고 양 씨의 오랜 흔적들을 모아 제본한 ‘MEMORY BOOK’을 유가족 품에 전달했다. 온도는 “자리에 모든 분이 참석하진 못했지만, 마음으로나마 함께 해주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길 바란다”며 클로징 세레모니를 마무리했다.


  수빈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게 소중한 친구가 돼 줘서 고마워. 또 아동학과 21학번 학생들에게는 따뜻한 동기가, 교수님들께는 예쁜 학생이, 가족들에게는 귀여운 막내딸이, 그리고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는 멋진 선생님으로 남아줘서 고마워. 우린 잘 지내. 따뜻하고 다정한 네가 혹여나 우리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 속상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각자의 자리에서 너를 마음에 담고 씩씩하게 지내고 있어. 


  사랑하는 양수빈! 바퀴벌레도 무서워하는 네가 잘 지내고 있을지 조금은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뭐든 해내는 너니깐 그곳에서도 씩씩하게 있을 거라 믿어. 부디 이제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적이었던 다이어트도 하지 말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누리며 살아. 그리고 그토록 바래왔던 워홀 경험도 해보고 종종 내 꿈에 나타나서 후기 알려줘. 


  수빈아, 그간 정말 수고 많았어. 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네게 가볍게 건네던 말이었는데, 오늘따라 이 말의 무게가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남기고 간 모든 것 간직하며 네가 그토록 원하던 동덕을 만들 수 있도록 나도 도울게. 정말 사랑해 양수빈.

 

(사진제공=故양수빈 씨 유가족)
(사진제공=故양수빈 씨 유가족)

 

김효주 기자 hyoju0208@naver.com
안나영 기자 anana2780@naver.com
최보영 기자 choiboyoung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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