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팬데믹의 광풍으로 우리 일상을 집어삼키고 있는 봄날이 계속된다. 매년 3월이면 분주하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던 신체의 리듬이 깨지고 막막한 기다림의 낯선 시간만이 하루하루를 채워가고 있다. 입학식, 개강파티, 신입생 환영회, 학과 MT 같은 관계의 행위가 자아냈던 반가움과 설렘의 풍경도 사라졌다. 졸고 있는 것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분명 아닌데, 그간 우리 몸속에 새겨있던 봄날 교정의 오랜 습관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찾아온 몽롱한 두려움에 의해 이제는 겨우 아스라이 떠오를 것 같은 지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학교 바깥 세계에서의 여러 변화는 그다지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성숙의 수준이 서로 어긋나 있던 동시대 자본주의는 은폐하려고 했던 몰락의 징후들 앞에서 새삼 우왕좌왕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의 탈을 쓰고 자행되는 혐오와 비아냥의 전술은 모양을 달리하며 그 특유의 단결된 메커니즘을 작동 중이다. 그로 인해 더 노골적인 구조적 폭력의 탐욕은 세계 곳곳에서 질서라는 이름으로 비극을 연출한다. 이렇게 2020년의 봄날은 가고 있다.
  허나 우리는 그럴수록 예외적인 삶을 그리워한다. 이는 사회가 잃어가는 고귀한 가치에 대한 깊은 사유와 물음을 다시 우리 모두의 것으로 민감하게 끌어들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사회적 고통의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삶의 자세를 정비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분주하고 정신없이 살아온 일상이 예기치 않게 잠시 멈추어 섰다. 예술이 우리에게 일러주듯이, 시간의 멈춤은 세계의 내면성을 성찰할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다들 어렵고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행해야 한다는 의례적인 반성으로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수 없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라는 수사를 사용하며 그야말로 거짓된 사회의 유서 깊은 본질을 가린 채 다시 프레이밍하려는 시도의 세련된 폭력성을 찬찬히 포착해야 한다. 역사는 말해준다. 거짓과 폭력의 시계는 멈추지 않음을. 그렇기에 팬데믹이 종식되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계속 해야 하는 사유와 물음의 싸움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것은 왜곡된 희망을 재차 좇는 무모한 시도와 다르다.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과정으로 저 피라미드 윗자리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자애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다. 여러 차례 경험했음에도 미처 몰랐던 것, 알면서도 외면했던 것, 혹은 침묵으로 동조했던 부조리함을 이제는 다시 신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 시간의 알레고리를 성찰하면서 말이다. 잔인하게 흘러가고 있는 봄날의 시간이 우리 공동체에 부여한 숙제가 아닌가 싶다.

                                                            임산  (예술대학 큐레이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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