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노구찌>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현재 일본의 천엔 지폐의 도안 인물인 노구치 히데요라는 일본의 의사이자 생리학자의 생애를 다룬 만화인데 박스 세트로 재출간까지 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이 만화가 꽤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인물을 과도하게 미화했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이므로 이에 대해 자세한 언급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화에서 노구치는 만년에 황열병의 원인균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한때 원인균을 찾았다고도 생각했으나 잘못된 실험으로 인한 오류였음이 밝혀진다. 그는 아프리카로 가서 연구를 계속 진행했으나 결국 본인이 연구하던 황열병에 걸려 1928년에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노구치는 황열병 외에도 소아마비, 광견병의 원인균을 찾았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결국 이러한 발견은 모두 오류였음이 그의 생전 또는 사후에 밝혀진다.


  노구치가 일생을 바쳐 노력했음에도 이들 질병의 원인균을 찾지 못했거나, 찾았다는 그의 주장이 오류였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황열병, 소아마비, 광견병은 모두 박테리아가 아닌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여러 차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크기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훨씬 작다. 박테리아는 크기가 보통 1마이크로미터(1000분의 1밀리미터) 정도인 데 비해 바이러스는 수십 나노미터(1나노미터는 백만분의 1밀리미터)다. 광학에서 회절 한계(diffraction limit)라는 게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광학기기로 제대로 볼 수 있는 가장 작은 구조는 사용하는 빛 파장의 절반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파장 범위는 400~700nm(보라색이 400nm, 붉은색이 700nm에 해당)이니까 아무리 좋고 비싼 현미경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200~300nm 정도가 내가 볼 수 있는 한계인데 바이러스는 이보다 훨씬 작다. 그러니 노구치가 아무리 노력한들 현미경으론 보이지 않았을 수밖에. 노구치의 사후인 1930년대에 전자현미경이 개발되고 나서야 비로소 인류는 바이러스의 정체를 규명하게 된다. 생물 교과서나 과학 기사에서 볼 수 있는 바이러스 사진은 모두 전자현미경으로 얻은 것들이다. 

  이제 우리는 여러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의 원인을 알고 있으며 또 일부는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돼 있다. 하지만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돼 있지 않은 질병도 많다. 코로나19처럼 말이다. 아직도 과학이 가야 할 길이 멀다.
               성지하  (자연과학대학 응용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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