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전 즈음 필자는 유학차 처음 미국으로 갔을 때 현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중 나온 선배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 그날은 마침 한국 학생 모임의 졸업생 환송회 및 신입생 환영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현장인 공원에 도착해 보니 몇몇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축구 게임이 아니라 그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광활한 잔디밭과 둘레의 우람한 나무들이었다. TV나 사진으로만 보았을 법한 아름다운 풍광에 (속으로 입을 벌린 채)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공원이나 길가 또는 냇가의 잔디는 한겨울에도 푸르렀는데, 길고 음산한 겨울로 악명 높던 그 지역에서 큰 위안이 되었다. 주택가였음에도, 사과의 유혹에 사슴이 쉽게 넘어왔고(아, 밤길에 사슴을 차로 쳤던 불상사도 있었다), 오리 일가족의 무단횡단 때문에 차를 멈추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부러웠던 건 공원을 비롯해 그런 잔디밭이나 크고 멋진 나무들, 야생동물들이 그냥 일상의 환경 속에 있다는 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에도 근린공원이 많이 조성되어 웬만한 동네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이 하나쯤은 있다. 잔디밭 공원은 드물지만, 동네 뒷산에 통로와 계단 등을 설치해서 만든 작은 숲 공원은 흔히 볼 수 있다. 살고 있는 동네에도 하나 있지만, 최근 걷기 운동을 시작한 필자가 즐겨 찾는 곳은 우리 학교 뒷산의 오동공원이다.      
  이미 많은 학내 구성원들이 알고 있겠지만, 두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오동공원은 동네 숲 공원치고는 그래도 큰 편이다. 제법 복잡하게 이어져 있는 산책로를 따라가다 마주하는 풍경도 다채롭다. 울창한 숲속에 설치된 검회색의 목재 구조물들은 군데군데 휴양림 느낌을 주기도 하고, 가끔 걸음을 멈추게도 한다(자연과 인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지만, 둘이 어우러져 있을 때 더 쉽게 우리의 미감을 자극하는 것 같다). 그럴싸한 바위들도 있고, 철쭉 등의 꽃밭도 있다. 두 언덕 사이를 가르는 아늑한 분위기의 오솔길은 때에 따라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특급은 아니지만, 꽤 훌륭한 경관도 제공한다. 애기능터의 남쪽 경관은 시내와 남산, 관악산까지 확 트여있고, 북서쪽으로는 북한산 능선과 봉우리 그리고 (잘 보면) 도봉산도 보인다. 우리의 일상적 환경 속에 이만한 공원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닌가! 강남이나 신도시의 조경이 잘 된 공원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 오동공원은 ... 사랑입니다.
                                                               최문수  (인문대학 영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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