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랑 봇 운영자가 자체 제작한 해시태그 이벤트 당첨 굿즈다 ⓒ트위터 '정세랑 봇'
△ 정세랑 봇 운영자가 자체 제작한 해시태그 이벤트 당첨 굿즈다 ⓒ트위터 '정세랑 봇'

 최근 한국 문학계는 여성 작가가 강세를 이룬다. 올해 초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강화길 작가를 시작으로, 최근 김유정문학상과 심훈문학상의 수상도 여성 작가가 휩쓸었다. 온라인 서점 YES24의 ‘2020년 9월 한국소설 월별 베스트 TOP10’를 살펴봐도 80% 이상이 여성 작가의 작품이다.

 이러한 열풍을 보여주듯, 최근엔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소재를 모티프로 한 굿즈, ‘덕질’ 잡지 등 다양한 팬 문화까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수많은 여성 작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오늘날, 그 원천은 무엇일까.

 

‘여성’을 잊지 않는 여성 작가들
 우선, 여성 작가들에게는 여성·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를 배척하지 않는 차별 감수성이 내재한다. 그들은 작품 안에 약자를 둘러싼 사회문제를 녹여낼 뿐 아니라, 폭력을 묘사할 때도 ‘재현의 윤리’를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개인의 슬픔을 전체의 고통으로 확장하면서, 이것이 절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작품 전반에 내세운다.

 2030 여성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지지받는 정세랑 작가 역시 이들 중 하나다. 정세랑 작가 팬 계정 ‘정세랑 봇’을 운영하는 20대 A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 작가는 현실에 녹아 있는 여러 문제를 반영한 소설을 창작하지만, 여성 독자들에게 결코 절망을 짊어지게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6월 출간한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는 독자 80%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 독자들에게 크게 주목받으며, 출간 열흘 만에 3만 여부 이상의 이례적인 판매량을 달성했다.

 

뿌리 깊은 남성 문학사에 대항하다
 그렇다면, 수많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2015년을 전후로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친 페미니즘을 일컫는 개념으로, 문학계에서도 이 시기를 중점으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그중 가장 큰 파급력을 행사한 사건은 2016년 SNS 내에서 활발히 이뤄진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다. 이 운동을 통해 문단 내 위력으로 행해진 폭력이 연이어 고발됐고, 근본적인 원인으로 남성 중심 등단 시스템이 지적됐다.

 이로써 남성이 기득권을 이룬 문단 체제 내에서 여성 작가가 살아남으려면, 권위로 행해진 폭력에 침묵해야 했다는 고발과 비판이 동시에 일었다. 이는 남성에 치우쳐진 기존 문학사와 더불어, 작가가 되기 위한 등단의 문이 좁았기에 생겨난 결과였다.

 SNS의 해시태그를 활용한 문단 내 ‘미투(Me Too)’ 운동은 공고했던 위계 구조에 균열을 일으키며, 외면받던 여성 서사를 재조명하는 발판으로 작용했다. 문단 내 권력 카르텔 고발의 중심 매개체였던 해시태그가 여성 작가를 지지하는 표현 방식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A 씨는 해시태그를 활용한 책 구매 인증 이벤트를 개최해 독자들의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해시태그 연대가 출판 시장의 선순환은 물론, 남성으로 점철됐으나 미화된 문학의 역사를 새롭게 바꿀 기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는다.

 

소비하는 여성들, 출판계 선순환 이끌다
 여성 작가의 작품 소비를 가시화하는 문화는 실제로 문단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등의 획일화된 등단 경로에서 벗어나 독립출판 등의 새로운 등단 방식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황유미 작가가 있다. 그는 독립서점에서 소설집 『피구왕 서영』을 출간했지만,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로부터 계속해서 재입고 요청을 받아 정식 출판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렇듯 독서는 단순 취향의 문제를 넘어 소비를 통해 지지로 향하는 하나의 연대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안에서 여성 작가와 독자는 서로에게 ‘여성’을 둘러싼 사회문제에 대항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 그렇기에 여성 작가의 작품을 통해 수많은 여성 독자들이 삶의 원동력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닐까.

노희주 기자 nnwrig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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