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소설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에게 어떤 물건이든 꺼낼 수 있는 행운의 자루를 받고 자신의 ‘그림자’를 내어준다. 주인공은 행운의 자루를 이용해 큰 부를 얻게 되지만, 그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에 의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척되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은 자신의 벗에게 이 사실에 대한 편지를 쓰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얼핏 보면 이 소설의 주제는 현대사회의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보다는 소설에서 ‘돈’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그림자’의 의미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림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에서는 위 책의 그림자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여행지의 현지인을 그림자가 있는 사람, 여행객을 그림자가 없는 사람으로 표현한다. 여행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그림자의 속성을 잘 표현한 듯하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슐레밀은 자신의 벗 샤미소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주게.”

 그림자란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조건인 셈이다. 이는 물질적인 또는 정신적인 어떤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림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은 그 자체로서의 존재가 인정되고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여유를 가지고 하루를 되돌아보는 것조차 힘들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사람다움’의 조건인 그림자를 포기할 수는 없다. 페터 슐레밀의 말처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가 항상 무사하도록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

김지원 학생 논설위원(문헌정보 17)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