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교수가 된 지도 벌써 9년째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걸 보니 세월이 참 빠르긴 하나 보다. 사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캠퍼스 생활이 즐겁다. 왜 그럴까? 5년 전쯤 나는 드디어 이유를 깨달았다. ‘아, 캠퍼스에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모두 있기 때문이구나’ 나의 대학생 시절을 되돌아봐도 그렇다. 대학 캠퍼스에는 신기하게도 사계절이 한꺼번에 흘러간다. 


  먼저 봄이다. 매년 새 학기가 되면 1학년 신입생이 들어온다. 이들이 봄이다. 고등학생 티를 갓 벗고 이제 세상 밖으로 나온 듯한 얼굴은 마냥 꿈에 부푼 새싹 그 자체이자 영락없는 봄이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1학년의 생활이란 만물이 소생하는 봄과 다름없다. 이에 질 새라 여름도 함께 있다. 바로 2학년이다. 작년에 봄이었던 어린 새싹의 모습을 더는 찾기 어렵다. 말투와 생각도 좀 다르고, 화장과 옷도 좀 다르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도 좀 다르다. 적당히 적응한 대학 생활에 엔진을 달았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짙게 우거진 녹음처럼 외·내로 성숙하며 뜨겁게 활동하는 여름 그 자체다. 이뿐이랴. 가을도 있다. 바로 3학년이다. 가을은 열매를 맺는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잎이 떨어지는 우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3학년은 결실과 우수의 상반된 두 얼굴을 갖는다. 대학 생활의 절반을 무사히 넘겼다는 대견함과 이제 그만큼 졸업도 한결 가까워졌다는 긴장감이 함께 하는 얼굴. 원숙해진 만큼 자신의 장래도 우수 어리게 볼 능력이 생겼다고나 할까. 딱 예비 어른의 얼굴이 3학년이다. 조용하지만 겨울도 함께 있다. 그렇다. 4학년이다. 춥다. 정말 춥다. 취직난으로 요즘은 더 춥다. 하지만 추웠던 만큼, 눈 내린 만큼 봄다운 봄을 맞을 수 있다. 그런 설중매의 가치를 깨닫는 게 4학년이다. 


  4년의 대학 생활이란 게 이런 사계절과 같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나도 이제 선생이 되어가나 보다. 사계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봄·여름·가을·겨울, 이상 없이 잘 돌아가면 즐겁겠지만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겨울 다음에 졸업하면 봄이 와야 하는데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는 제자가 있으니 말이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란 졸업이라는 이별을 전제로 한, 참 특별한 만남이다. 이 만남의 가치는 그 만남의 끝이 겨울이 아니라 봄이 되도록 서로 노력하는 데 있다. 내가 코로나19에 통곡하는 이유는 이런 사계절을 몽땅 빼앗아갔기 때문이다.

                                                    이동규 (공연예술대학 방송연예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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