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즈음 연구의 방향을 조금 생소 한 쪽으로 틀었다.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 (1970년대) 전에 뜨겁게 떠오른 후 지금까지도 환한 조명 아래에 놓여 있는 연구 분야지만, 내가 해왔던 ‘전통적인’ 공부와는 거리감이 있는 분야였다. 크게 잡아 말하자면 ‘근대 서양 음악예술 및 음악문화에서의 여성’이 그것이다.

  여성사에 관심이 있어 그쪽을 향하게 된 건 아니다. 근대 문학과 예술의 밑거름이 된 당대 ‘메세나’(Mecenat: 문화예술 후원 활동)의 모습을 동료들과 들여다보는 중에 여성들이 행한 후원의 반짝임이 간간이 눈 길을 끌었기에 오랜 망설임 끝에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서구인들은 한 세기 전까 지 줄곧 음악과 관련된 여성의 (공식적인) 활동을 억누르고 적절치 않은 것으로 치부 하면서 그것들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일에 무척 인색했다. 그러니 연구의 결실을 제대로 맺지 못할 수 있다는 염려가 앞선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정치 · 경제 · 사회 · 종교 · 문화 가 재편되는 격동의 근대(17-18세기)에 여성들은 학문과 예술 그리고 음악을 배우고 익히며 향유하고 후원하면서 음악 예술, 음악문화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 그뿐 아니다. 결혼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근대 음악의 전파도 이루어냈다.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오페라가 북쪽으로 전파돼 ‘세계의 음악’으로 자리 잡는데 큰 몫을 해냈다. 음악을 ‘하는’ 여성에게 절대 관대하지 않았던 시대에 새겨진 놀 라운 족적들은 부족하기만 한 당대 기록물들 사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역사는 반복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서양의 근대에 못지않게 재편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혁명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만으로도 벅찬데, 이것이 ‘코로나19’를 만났다. 격동과 침체가 강렬하게 공존하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우리의 학생 들에게 혼란과 혼동과 버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이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고단함을 모르며 자신을 연마하는 우리 학생들, 우 리 제자들의 모습에 염려 대신 희망을 품어 본다. 주변의 조건이 어떻든 진정한 관심과 의지와 즐김으로써 과감히 ‘행동’한, 그렇게 크고 작은 의미의 흔적을 남긴 여성의 역사도 반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역사’라는 것은 학문적으로 인정되어 글로 기록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 의미 있게 새겨지고 남겨지는 것이 더 소중한 ‘역사’다.                                                                                                                                                   나주리 (예술대학 관현악과) 교수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