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지아 너 금 밟은 거 아냐? 빨리 나가.” 피구 시간, 반을 주도하는 보라의 말에 아 이들의 시선이 지아에게 쏠린다. 여기서 지아가 금을 밟았는지 그 여부는 중요치 않다. 애초에 금은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이는 지아가 나가길 바라는 보라의 바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저 불편한 분위기를 깨야 할 책임은 지아에게 있을 뿐이다. 그때 선이 말한다. “한지아 진짜 금 안 밟았어. 내가 다 봤어.”

  영화 <우리들>의 한 장면이다. 선이 친구들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일명 ‘따’를 당했을 때, 가장 듣고 싶었을 이 한마디. 그러나 선은 듣지 못한 그 한 마디로 지아와 선 사이 뒤틀렸던 감정이 맞춰진다. 그렇게 아이들은 한 뼘 성장한다.

  만일 선이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넘어갔다면 어땠을까. 혹은 자신을 대신해 지아가 따돌림의 대상이 됐음에 안심하거나, 두려움에 모른 척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의 무게는 무척 달랐을 테다.

  그러나 선은 회피하지도 침묵하지도 않는다. 선과 아이들 모두가 묵언했을 때, 폭력의 역사가 종식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침묵은 해결책도, 보호막도 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의 평화는 나의 침묵이다.” 개념미술가 바버라 크루거 작품 속 말처럼, 평화는 텁텁이 쌓인 침묵 덕에 유지된다. 그리고 그 침묵 사이로 무수한 폭력의 역사는 반복된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더 많은 선이 필요하다. 스스로 선이 될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침묵을 강요하는 위력은 바위처럼 단단하고 거대하다. 당장은 그 평화를 깰 수 없음을 알더라도, 입을 떼고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침묵은 그저 시간을 연기해 줄 뿐, 케케묵은 거짓 평화를 지속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하주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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