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몇 년 동안 같은 일과를 보내서일까. 우리는 만날 때마다 과거의 우리를 꺼낸다. 새로운 건 없다. 이전에도 숱하게 나눴던 이야기의 반복이다. 언젠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또 고등학생 때 얘기를 꺼낼까?
  그때가 제일 좋았잖아. 간결하고도 명쾌한 답이었다. 우리는 추억팔이를 빌미로 현실을 잠시 떠났던 거다. 제아무리 힘들던 과거라도 ‘시간’이라는 특효약과 ‘망각’이라는 치트키 덕분에 사건은 미화되고, 감정은 무뎌지고, 기억은 흐려진다. 지나온 과거는 당장 겪고 있는 현실보다 그럴싸하다.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탄생한 지금, 코로나 시대. 다닥다닥 앉아 공부하고, 먹고, 놀던 매일은 과거가 됐다. 우리는 오늘도 푸념한다. 답답해, 지루해, 할 수 있는 게 없어. 혹은 막연한 희망에 매달린다. 백신 나오고 나아지겠지, 내년쯤 되면 괜찮아지겠지. 그러나 시간은 역행할 수 없다. ‘노멀’했던 2019년 이전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한 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이상, 그 어떤 반발이 나와도 세상은 뒷걸음치지 않는다. 얼어붙은 것으로 보여도 개인 그리고 개인들이 이끄는 기업과 국가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는 피할 수 없다면, 질문에 답할 때다. 새로운 시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출 텐가, 혹은 새로운 시대를 자신의 선택으로 살아볼 텐가?
  나는 오래 주저앉았다. 입학한 지 4년이 돼서야 걷고 싶은 길을 찾았고, 해보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 타이밍에 들이닥친 코로나 시대. 그 막막한 시대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나. 답 없는 앞날에 분노했다가 슬퍼했다가 다시 분노했다. 이전에 좋아했던 웹툰을 다시 보고, 유럽을 여행하던 사진 속 나를 미친 듯이 부러워했다. 후회도 빼먹지 않았다. 이때 더 놀 걸, 이때 더 배울걸, 이때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걸.
  과거를 놓지 못했던 이유를 지금은 안다. 시대의 변화가 워낙 급진적이어서 낯을 가렸다. 그 ‘낯섦’ 때문에 한국에서 법칙처럼 내려오는 ‘○○할 나이’에 다시 얽혔다. 그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꽤 오래 잊었다. 겨우 스무 살 남짓 살아온 우리는 앞으로 최소 몇 번의 커다란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다음부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올라타겠다. 그날을 위해, 툭툭 털고 일어서는 것부터 시작해본다.

박윤혜 학생 논설위원(경영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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