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숭정각(崇旌閣)

우리는 ‘역사적 명소’라고 하면 광화문, 경복궁, 창덕궁 등 으리으리한 궁궐이나 하루를 투자할 만한 곳을 떠올린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보면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옛날 조상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명소가 하나씩은 존재한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숭정각(崇旌閣)도 이러한 역사적 명소라고 할 수 있다.

숭정각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열녀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전각이다. 전각 옆에는 ‘열녀문’이라고 하며 그 내용을 새긴 비석이 있다. 열녀문은 지아비에 대한 절개를 지킨 여인을 기리기 위해 임금이 내리는 문이다. 숭정각이 보호하는 이 열녀문은 1729년(영조 5년) 임금이 원정익의 부인 전의이씨(全義李氏)에게 내린 것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씨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총명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았다. 남편 원정익과 혼인한 뒤에는 그를 정성껏 섬기고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중병으로 앓아누웠고, 그녀는 백방으로 약을 구하며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하지만 남편은 곧 세상을 떠났다. 3년 상을 치른 후, 그녀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식음을 전폐했고, 20대 후반의 나이로 단식사(斷食死)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정은 ‘열녀 원정익의 처 전의이씨의 문’이라고 기록된 열녀문을 하사했다.

원정익의 후손은 대대로 이 열녀문을 보존해오다 2004년 6월 이씨 부인의 10세손인 원재연 옹과 원주 원씨 종친회가 양천구청에 기증했다. 양천구는 2005년 5월 열녀문을 장수공원 길목에 이전·복원했고, 숭정각과 비석도 세워 하나의 문화역사 공간으로 조성했다. 도로변과 인접한 곳인 길목에 둔 까닭은 누구나 열녀문을 보게 하려는 마음에서다.

기증한 후손들과 양천구청의 뜻처럼 전각은 신월동 주민이 길을 오가며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있다. 산책을 하려고, 학교에 가기 위해, 귀갓길 등의 이유로 매일 역사적 명소를 지나친다. 이곳은 또한 서울정도 600주년 기념명소에도 선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익숙함 때문일까. 아님 ‘역사적 명소’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은 탓일까. 이곳을 지나칠 때 전각이나 비석을 주의 깊게 바라보거나 읽는 주민은 없었다.

숭정각은 작은 전각 하나에 불과하지만, 볼거리가 적은 것이라도 그 안에는 조상의 역사가 담겨있다. 우리의 일상이 훗날 역사로 남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자. 날을 잡고 명소를 가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역사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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