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약 25년 후엔 65살 이상의 노인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그러나 정작 노인계층은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이 조사한 ‘2020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노인계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청장년층보다 4배나 높다. 이렇듯 ‘빈곤’은 노인계층을 고질적으로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됐다. 그리고 가난의 끝에 내몰린 노인에겐 ‘폐지 수거’가 거의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으로 남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고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계층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희망손수레 사업단을 찾아갔다. 올해 1월, 정부로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 지원을 받고 시작된 희망손수레 사업단은 폐지 줍는 노인과 근로계약을 맺어 그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고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희망손수레 사업단 소속 노인들이 폐지 수거를 돕고 있다
△ 희망손수레 사업단 소속 노인들이 폐지 수거를 돕고 있다

비어있는 수레, 쌓여가는 시름
   지난 18일 오전 9시,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흐린 날씨였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을 맞으며 계산2동 주택가에 진입했다. 좁은 골목길을 서너 번 지나고 나니, 파란색 화물용 트럭이 놓인 희망손수레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별로 안 왔어요. 어제 비가 와서.” 폐지의 무게를 기록하던 박 반장이 기자를 발견하고선 말을 건넸다. 평소 같으면 스무 명 정도의 노인이 폐지를 싣고 사무실 앞으로 찾아오지만, 이날은 열 명도 채 모이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추워지면 평소 할당량의 3분의 1도 못 채워. 길도 미끄럽고, 손도 시리고.” 김 반장은 지금보다도 다가오는 겨울이 더 큰 고비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매서운 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언급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박 반장이 입을 열었다. “눈비라도 내리면 길거리에 폐지도 없고, 있어도 젖어서 돈이 안 돼.” 젖은 종이는 실제 무게보다 감량해 측정하기 때문에 고물상에 가도 얼마 받지 못한다는 것이 박 반장의 설명이다. 트럭 위 얼마 쌓이지 못한 폐지를 바라보는 김 반장과 박 반장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 수거한 폐지를 실은 트럭의 모습이다
△ 수거한 폐지를 실은 트럭의 모습이다
△ A 씨가 폐지를 손수레에 넣고 있다
△ A 씨가 폐지를 손수레에 넣고 있다

 

폐지 수거는 굽어가는 허리에도 반복됐다
   이윽고 트럭에 시동이 걸리자, A 씨가 다급하게 수레를 끌며 도착했다. “아이고, 조금만 더 늦었으면 출발했겠네.” A 씨가 트럭 앞에 수레를 내려놓자, 양옆으로 서너 명의 노인이 붙어 폐지 무게를 재고 트럭으로 옮기는 것을 도왔다. 금세 폐지를 트럭에 털어버린 A 씨는 다시 빈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폐지를 주우며 생활한 지 얼마나 됐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10년 정도 됐어요. 가만히 있으면 뭐 해. 이렇게라도 움직여야지.” A 씨는 이제 어느 건물에서 어떤 종이가 나오는지도 다 아는 베테랑이다.

   당찬 출발이었지만, 언덕길을 몇 번 오르내리자 A 씨는 고통을 호소하며 길가에 잠깐씩 멈춰 섰다. “허리가 말도 못 해. 잠을 자도 몇 번을 깰 정도야.” 폐지 수거 과정에서 그를 가장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허리 통증이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약값, 쌀값을 벌기 위해 폐지를 줍는다. “이곳이 산지라 언덕이 많아요. 그런데 이젠 마스크까지 끼고 올라가야 하니까 숨을 쉴 수가 없어.” A 씨는 마스크를 잠시 내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휴식도 잠시, A 씨는 금세 주택가 앞에 놓인 폐지를 주우러 갔다. 익숙한 듯 박스를 접어 수레에 넣는 그의 모습엔 지난 세월이 가득 담겨 보였다.

   A 씨가 사무실에서 집으로 가는 30분 동안 모았던 폐지는 약 5kg, 돈으로 환산하면 400원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온종일 폐지를 모아도 하루에 4,000원도 벌기 힘들어.” A 씨는 오늘날 폐지 단가가 현저하게 떨어져, 생계유지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3일 환경부·한국환경공단·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실시한 재활용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17년 kg당 143원이었던 폐지 가격은 계속된 하락세로 현재는 kg당 78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고물상이 재활용 업체에 팔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최고 단가일 뿐이며, 실제 폐지 수거 노인이 받는 kg당 폐지 가격은 낮게는 20, 30원으로 시작해 높아봤자 60원 내외에 불과하다. 사실상 고물상에서 부르는 대로 폐지 가격이 결정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폐지 수거 노인끼리 폐지를 두고 경쟁하는 이른바 ‘폐지 경쟁’도 배부른 과거가 됐다.


‘울며 겨자 먹기’식 폐지 가격
   A 씨와의 동행을 마치고 사회복지회관으로 돌아와, 희망손수레 사업단의 김 반장과 박 반장을 다시 만났다. 이들은 희망손수레 사업단에 소속된 폐지 줍는 노인으로, 올해 초부터 폐지 수거 활동 전반을 감독하고 있다. 김 반장, 박 반장은 폐지 수거의 가장 큰 어려움이 단가 하락이라고 입을 모았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해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한 적도 있어요, 저는.” “단가가 워낙 싸니까 죽어라 해도 40만 원도 못 벌더라고요.” 서로의 말에 공감하며 웃는 이들에게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묻어났다.

   이렇듯 폐지 수거는 생계유지 수단이라 말하기조차 어려운 활동이다. 노동력 대비 수입이 낮을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체계조차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 폐지 산업 구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길 듣고자 희망손수레 사업단의 김경호 주임을 찾아갔다. 2017년부터 노인 일자리 분야에서 일해온 김 주임은, 현재는 희망손수레를 통해 폐지 수거 노인과 함께 일하고 있다.

   “사실 폐지를 주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르신들은 아무리 단가가 떨어져도 활동을 중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쇠한 몸으로 매일같이 수레를 끌고 다녀도 수익이 낮다 보니, 요즘에는 폐지 줍기를 포기하는 노인도 생겼다. 김 주임은 이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재활용 업체에만 자체적으로 운영을 맡긴 점을 꼽았다. 우리나라 폐지 산업은 일정한 체계나 제재 없이 운영되고 있어, 국내 재활용 업체 측에서 무턱대고 폐지의 단가를 후려쳐도 이를 막을 방도가 전혀 없다. 따라서 그는 빈곤 노인계층에게 남은 최저선의 노동인 폐지 수거가 헐값 노동으로 대체되지 않으려면, 그만큼의 사회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정적으로 폐지 단가 폭락에는 지난 2018년 환경 보호를 이유로 폐지 수입을 제한한 중국의 영향이 컸다. 이로 인해 전 세계 폐지 가격이 크게 떨어졌고, 특히 국내 업계만으로 자원 재활용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국은 더 큰 타격을 받았다. “5원, 10원이라도 어르신께는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커요. 주먹구구식의 거래 형태가 더는 이어져선 안 되는 이유죠.” 그는 이러한 폐지 수거 문제에 정부 혹은 한국제지자원진흥원이 개입한다면,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드러냈다.

   김 주임의 말처럼, 디지털 문화의 발달 그리고 노인 일자리의 부재 속에서 노인계층은 사회로부터 단절되고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잖아요. 노인 일자리 분야에서 일하면서 어르신들도 열정이 가득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점에서 이들이 나설 수 있는 분야가 없다는 건 우리 사회의 큰 허점을 드러내는 부분인 거죠.” 최근엔 코로나19와 더불어 계속되는 폐지 가격 하락에, 폐지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하던 노인마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이들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빈곤 노인계층을 향한 문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더욱 체계화해야 할 시점이다.

노희주 기자 nnwrigg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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