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인사이트 ‘개그우먼’ 편에서 치열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다큐 인사이트 ‘개그우먼’ 편에서 치열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시대가 바뀐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대를 바꾼 것입니다.” 이는 지난해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쥔 개그우먼 김숙의 수상소감이다. 최근 개그우먼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활약하면서 이들의 판도가 새롭게 구축되고 있다. 이를 방증하는 듯, 최근 연말 시상식의 대상 역시 3년 연속 개그우먼들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간 개그우먼이 예능계에 일으킨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치고 빠지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국내에서 공개코미디가 성행했던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개그우먼의 무대는 “대사 한마디가 간절했을 정도”로 척박했다. 이에 KBS <다큐 인사이트> ‘개그우먼’ 편에서 김상미 예능PD는 “하나의 코너는 평균 6명의 출연자로 구성된다. 그러나 그중 개그우먼은 1~2명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치고 빠지는 역할’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 시절 공개코미디에서 여성 희극인을 뽑는 건 극히 일부였으며, 뽑혔다 해도 이들에겐 무대에 설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개그우먼은 웃음코드 또한 제한받았다. 김 PD는 “당시 개그계에는 뚱뚱한 여성, 못생긴 여성, 예쁜 여성에 해당하는 캐릭터를 만들면 웃기기 쉬워진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었다”며, 사실상 개그우먼이 관객을 웃길 수 있는 요소는 ‘얼굴’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들은 ‘얼굴’을 앞세워 웃음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개그우먼은 여자친구나 며느리와 같은 성 역할이 고정된 캐릭터를 주로 배정받아, 단편적이고 한정된 역할만을 수행해야 했다.

 

스스로 만든 무대에 오르다 
  기존 개그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낀 개그우먼들은, 정형화된 캐릭터 속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무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2009년, 이러한 흐름 속에 탄생한 <개그 콘서트>의 코너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직설적인 입담으로 당대의 위계질서 사회를 풍자해 신선한 재미를 유발했다. 또한, 이 코너는 여성 희극인에겐 보기 드문 최우수 아이디어 상도 받으며, 여성 개그계의 입지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 이후로는 개그우먼 박나래와 장도연의 ‘패션 넘버 5’, 개그우먼 신보라와 김지민의 ‘뿜 엔터테이먼트’ 등 개그우먼이 재창조한 희극 무대가 쏟아졌다. 정해진 역할에 선택받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개그우먼의 모습에서 탈피해, 이들 역시 자신만의 특색 있는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성 개그계에는 다시 정체기가 찾아왔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남성 중심의 리얼 버라이어티와 관찰 예능이 성행하면서 개그우먼들의 방송 출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후 자연스레 공개코미디까지 쇠퇴하며, 이들은 더욱 밀려나게 됐다.

 

개그우먼의 이유 있는 흥행 
  수차례의 예능 격변기를 극복하고자, 개그우먼은 직접 콘텐츠 기획에 앞장섰다. 기성 프로그램의 섭외를 기다리지 않고, 이들만의 특색 있는 기획력과 재치로 승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이다. 이는 국민들의 고민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팟캐스트 전체 순위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여성 예능의 저력을 보여줬다. 

  오늘날까지도 개그우먼들은 기존의 남성 예능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를 개척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들이 현 방송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콘텐츠의 주 소비자인 2040 여성을 공략했고, 여기에 실력 있는 개그우먼들이 만들어낸 신선한 웃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치열하게 달려온 그들에게 이유 있는 흥행이 계속될 수 있을까. 정통코미디 쇠퇴로 무대를 잃은 개그우먼에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고 더 나아가 기성·신인 예능인 간의 연대가 활성화된다면, 머지않아 여성 예능의 르네상스가 도래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장수빈 기자 subin53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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