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욕구를 가진 채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더불어 완전 무한한 존재가 될 수 없기에, 충족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며 결핍에 시달린다.

  끊임없는 결핍 속에서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키는 동시에 사회를 존속하는 방법은 자연스레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 사회 역시, 그 결과 우리 사회의 규범이 됐다. 이는 여성과 달리 생산 능력이 없어 위협을 느낀 남성이, 자신의 지위를 강화해 결핍을 채우는 체제다. 영화 <더 랍스터>는 이를 극단적으로 강화해 현 사회의 기괴함을 나타낸다. 분명 동성애자를 위한 선택지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성애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커플 간의 사이가 멀어졌을 경우 아이를 통해 관계를 회복한다는 점에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지향함을 알 수 있다. 일정 기한 내 연인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장면은, 성애적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을 부족한 상태라고 정의하는 현 사회의 일면과 유사하다.

  영화는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만든 체제가 역설적으로 사람들에게 더욱 결여를 유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 사회는 커플을 빨리 만들기 위해 서로의 공통점을 찾게 한다. 타인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부분을 찾기엔 많은 관찰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공통점을 찾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공통점만을 좇아 이뤄진 관계는 사랑의 본질을 잊은 형태일뿐더러 인간의 존엄성마저 잊은 양상이다. 동물이 되는 것이 두려워 커플이 됐지만, 이미 동물처럼 생존과 번식에만 의의를 둬 마치 짝짓기를 보는 듯하다. 이에 대항해 만들어진 숲속 사회도 극단적 방향으로 구성된다. 어떤 욕망은 자체만으로 사회 체계에 위협을 가하지만, 숲속 사회는 욕망에 기반을 둔 반항이 아닌 현 체제에 대한 단순한 반항이다. 현 사회와 반대되는 방향으로만 구성된 체제는 또 다른 결핍을 발생시킨다.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 체제가 오히려 결핍을 유발하고 있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인간은 결핍을 충족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지만, 결핍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극단적인 반체제 또한 결핍을 유발한다. 인간은 결핍을 충족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갈망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불가능 속에서의 갈망이 인간의 삶일지도 모른다.

김지은 학생 논설위원(국어국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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