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 봤던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가 생각나는 봄이다. 故 이은용 극작가가 창작한 짧은 희곡 여섯 편이 이어지는 이 작품에서는 8명의 배우가 젠더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연기한다. 이들은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수자로서의 당사자성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회가 규정해온 성의 이분법적 경계를, 그리고 이를 둘러싼 ‘혐오의 벽’을 허물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간다.

 사회를 향해 농담처럼 던지는 배우들의 대사는 퀴어를 둘러싼 차별과 혐오에 대한 고백이자 투쟁이다. 故 이은용 극작가는 이러한 목소리를 담은 이 공연이 모든 소수자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돼주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들의 의견은 묵살되기 일쑤였고, 결국에는 생존할 권리조차 빼앗았다.

 이를 미뤄봤을 때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했던 한 정치인의 말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는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모순적으로 성 소수자들이 집결된 집회에 대해선 ‘보지 않을 권리’를 내세운다.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럼없이 이들의 존재를 부정하며 시민사회의 분열을 자초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태도에서 이들이 도시 한가운데로 나와야 했던 이유가 드러난다. 성 소수자들은 사회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도심 속에서 발버둥 쳐왔던 것이다.

 잇따른 성 소수자들의 죽음이 단지 추모의 대상만이 되지 않도록 다음 세대의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수차례 발의됐음에도 불구하고 외면 당했던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무자비하게 확산되는 혐오의 굴레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노희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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