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역주행의 아이콘 ‘브레이브 걸스’, 오스카 수상의 주인공 ‘윤여정’을 보면 꼭 틀리지만은 않은 표현 같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포기하지 않았기에, 꾸준했기 때문에 재조명되고 성공의 기회를 얻은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꾸준함을 알아본 대중들이 소위 ‘혼쭐’을 내주기 전까지, 서서히 그들의 내공과 알 수 없는 벼락같은 힘이 쌓여 기적을 만들었다. 다시 한번, 우리는 브레이브 걸스와 윤여정처럼 하기만 하면 될까? 성공에 늦은 때는 없음을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마저 성공이 내게도 올 거라는 완벽한 확신은 주지 못한다.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기적을 쓴 사례는 드물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하면 된다’는 문장이 희망차다가도 무기력해지는 이유를 적절히 분석했다. 책은 해당 문장이 능력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며 성공한 자에게는 자기 스스로 해냈다는 오만함을, 패배한 자에게는 남들보다 노력이 부족했다는 좌절감을 안겨준다고 말한다. 재능, 운, 심지어 노력마저 누구나 똑같이 갖출 수는 없기에 무언가를 ‘스스로’ 해냈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성공이라는 행운은 우리 손 밖의 문제일 뿐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돼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신의 성공에 연대해준 사람에게는 무례함이며, 운을 간과한 어리석음에 불과하다.

  ‘하면 된다.’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희망적이지만 매정하다. 잘못된 노력의 잣대를 내미는 요즘 세상에서는 위로보다 핑계처럼 들릴 때가 더 많다. 그동안 이 말에 속아 견디기 힘든 부담감과 수많은 차별을 겪은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는가. 모든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브레이브 걸스와 윤여정은 모순덩어리 능력주의 사회 속에서 노력한 자들의 대변인임이 분명하다. 그들은 성공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보여줬다. 무한 자기 책임의 논리에서 물러나 운의 요소, 대중의 관심과 주변인의 도움이라는 공동의 연대감, 감사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들을 보고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해 줘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네 덕이야. 운이 따랐어’, ‘운이 안 좋았어’라고 말하는 무심한 연대와 위로, 숨통 트이는 마음들이 필요한 때 아닐까. 최고라는 말을 삼가고, 다 같이 최중이 되자는 윤여정의 수상소감처럼 말이다.

오세진 학생 논설위원(국사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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