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방송 시작 전 등급 기호를 고지한다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방송 시작 전 등급 기호를 고지한다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재밌어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돼.” 드라마 마니아라는 대학생 A 씨는 지난달 2일 종영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2>의 애청자였다. 시즌 1부터 ‘본방사수’를 이어온 그는 처음엔 이 드라마를 시청해도 될지 고민이 들었다고 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과 감금, 시체 유기 등의 장면이 직접적으로 그려져 불쾌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른바 ‘사이다’ 전개로, A 씨를 비롯해 많은 시청자를 TV 앞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드라마와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
  이전의 ‘막장 드라마’는 시청자로부터 외면받는 경향이 있었다. 개연성 및 윤리성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방영된 <펜트하우스>는 드라마계의 한 획을 그으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매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고, 주인공들이 복수에 복수를 이어가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전개를 선보이며 시청자를 열광하게 했다.

  이렇듯 시청률을 잡는 데는 성공했지만, 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서는 논란의 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펜트하우스> 2회 방영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로부터 ‘주의 및 등급 조정 요구’ 처분이 가해진 것이다. 해당 회차에서는 가해자 무리가 중학생 인물을 수영장에 빠트리고, 폐차장에 감금하는 등의 집단 폭력 장면이 그려졌다. 심의 당시 이소영 방심위원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이 돼야 하는데, 그보다는 나중에 가해자들이 당할 보복에 따른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로 전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진숙 방심위원 또한 “청소년들을 폭력의 소재나 볼거리로 전락시킨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우려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해당 방영분은 ‘15세 이상 시청가’였다. 방심위 선고 후 <펜트하우스>는 일부 회차에 대해 ‘19세 이상 시청가’로 연령 등급을 올리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납치‧불륜‧살인‧학교폭력 등의 장면이 지속해서 송출됐다.

 

‘19세 이상 시청가’ 딱지 붙이면 끝?
  일각에서는 ‘드라마는 영화보다 더욱 과한 제재가 가해지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비디오물과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과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영화‧비디오물은 상영 전까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연령 등급을 통보받아야 한다. 방송프로그램 역시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연령 등급을 지정해야 하지만, 각 방송사의 자체심의기구가 등급을 분류한다는 점에서 영화‧비디오물과 구분된다.


영화의 경우 ‘청소년 관람불가’ 또는 ‘제한상영가’로 분류된다면 극장 상영 및 흥행에 한계가 발생한다. 그 때문에 일부 문제가 되는 장면을 삭제하거나 편집한 후, 재심의를 요청해 등급 연령을 낮추곤 한다. 그러나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시청 연령 제한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가정에서 특별히 제재하지 않는다면 아동 및 청소년도 손쉽게 ‘19세 이상 시청가’ 드라마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흥행 이후로 19세 이상 시청가 프로그램이 방송 시장에 다수 자리 잡으며, 청소년 시청자가 각종 차별‧폭력적 장면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다. <부부의 세계>는 전 회차 19세 판정을 받은 드라마로, 당시에도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는 장면을 가해자의 시점으로 그려내 방심위로부터 ‘권고’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최종화에서 28.4%의 최고 시청률을 달성해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으며, 같은 방송사의 후속 드라마인 <우아한 친구들>도 전 회차 19세 이상 시청가 등급으로 방영을 이어나갔다.

 

제동 걸린 방송 심의, 속도 위반하는 드라마
  최근에는 SBS <모범택시>, tvN <마우스> 등이 19세 이상 시청가로 편성돼 방영 중이지만, 범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모범택시>에서는 비장애인 남성이 장애인 여성을 감금하고 폭행하는 장면이 노출돼 많은 시청자의 공분을 샀다. 각 방송사의 자체심의기구가 이러한 문제를 시정하지 않는다면 방심위가 사후 조치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내에서 제5기 방심위 위원 추천 절차가 지연됨에 따라, 지난 1월 말 이후로 심의 회의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3개월이 넘는 공백 동안, 앞서 ‘주의’ 처분을 받았던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시즌 2로 돌아오며 △미성년자 대상 살인미수 △가학적인 폭행 △집단 학교폭력 장면 등을 송출했다. 이러한 장면들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6조(생명의 존중) 및 제36조(폭력묘사) 등의 조항에 위반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제지할 방도가 부재한 상태다.

 

  빠른 전개와 복수혈전을 통해 시청자의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드라마가 2021년의 방송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시청자를 잠시 현실로부터 분리해, 아주 잠깐이라도 쾌락과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극적 재미 이면에는 폭력의 당사자들이 존재한다. 폭력과 차별에 무감각해지는 순간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는 무너진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드라마 내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평등을 놓치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도헌 기자 heengl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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