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 즉각 철회하라!” 소음이 가득한 연남파출소 앞, 이질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우렁찬 외침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수많은 인파의 이목이 쏠렸다. 그 시선을 따라 바라본 곳에는, 두 손에 피켓을 들고 맹렬히 구호를 외치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반대 청년학생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의 일원들이 있었다. 지난 8일,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고,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 철회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기 위한 제2차 청년 탈핵 행진이 막 시작될 찰나였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팸플릿을 보고 시민들이 청원에 참여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팸플릿을 보고 시민들이 청원에 참여하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규탄, 그 발자취를 따라서
  오후 6시 정각이 되자, 운동본부 선발대를 이끄는 최재봉 대표가 행진의 시작을 알리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에 맞춰, 참가자들은 2명씩 줄을 선 채로 힘차게 두 발을 내딛었다. 약 50m정도 지나자, 최 대표는 발걸음을 멈추고 마이크를 들었다. “2023년부터 20년에 걸쳐 125만 톤 이상의 오염수가 바다에 흩뿌려지게 됐으나, 일본은 주변국의 동의를 구하지도, 정확한 데이터를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일본의 적반하장 태도를 지적하며, 우리 정부에게 사후 대처가 아닌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뒤따르던 회원들은 최 대표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듯 큰 소리로 “철회하라. 철회하라. 철회하라”라는 구호를 제창했다. 그리고 이 강렬한 외침은,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더욱 커져갔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의 약 70%에는 이미 한 차례 정화를 진행했음에도 여전히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주요 방사성 물질인 스트론튬은 배출 허용 기준의 110배 이상을 초과했으며, 트리튬은 허용 기준의 10배에 가까운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제거설비로 오염수 속 방사성 핵종을 걸러내고, 이로 제거되지 않은 트리튬은 물에 희석해 방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전체 오염수 중 일부분에만 해당한다. 즉, 방사능 물질로 인한 피해를 간과한 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일본의 결정은 차후 어떤 문제를 불러일으킬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오후 7시, 운동본부의 행진은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 다다르며 일단락됐다. 그 후 운동본부는 신촌 U-PLEX 광장으로 이동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연세로에서 약 30명의 일원은 각각 거리를 두며 일제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었다. 그 중심에서 최 대표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일본의 결정은 오염수 보관에 필요한 탱크 건설비용을 줄이려는 술수에 불과합니다. 또한, 이를 지지한 미국의 속내에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언제부터 방사능 오염수를 방출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 된 건가요? 오염수 처리 문제에서 가장 우선시돼야 할 것은 생명과 안전입니다.” 최 대표의 연설에, 시민들은 엄지를 들어 올리며 지지를 표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한 125인 대학생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한 125인 대학생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거리두기 1인 시위를 마친 방사능 오염수 방류반대 청년학생운동본부의 모습이다
△거리두기 1인 시위를 마친 방사능 오염수 방류반대 청년학생운동본부의 모습이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
  이들을 다시 만난 건 2주 뒤인 22일,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한 125인 대학생 행진 날이었다. 오후 3시 45분, 집결 장소인 이대역 5번 출구에 도착하자 많은 인파가 돋보였다. 이전 행진보다 서너 배를 웃도는 이들이 모였고, 곳곳에 기성언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성이기도 했다. 이에 놀란 것도 잠시, 기자회견 준비로 분주한 운동본부의 움직임을 따라, 기자 역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 정각이 되자, 기자회견의 시작을 알리는 최 대표의 음성이 사방으로 퍼졌다.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모두의 페미니즘 대표 김예은 씨는 젠더 관점에서 오염수 문제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며 말문을 뗐다. “미국은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모두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수와 관련해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는 제안문과 기사에도 여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김 대표는 성별 영향을 무시한 채 남성을 기준으로 안전의 근거를 판단하는 것은 편협적인 행동임을 역설했다. 이에 그를 바라보던 참가자들은 큰 환호를 보내며 해당 발언에 동의했다. 우리 사회의 성적 무관심에 경종을 울린 김 대표의 발언에,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유발할 여성들의 직‧간접적 피해가 절실히 와닿았다. 

  연설이 끝나자 기나긴 5.6km 행진의 서막이 올랐다. 이날 선발대에서는 ‘1진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1열은 오염수를 상징하는 노란색 드럼통을, 2열은 오염된 지구 조형물, 3열은 피켓, 마지막 4열은 구호가 적힌 사다리 플랑을 들며 행진을 이어나갔다. 경찰의 협조 아래 순탄하게 진행된 행진은 도로의 가장 우측 차선 위를 걸으며 강렬한 자태를 뽐냈다. 도로 가차선을 점령한 광경에 주변 사람들은 관심 어린 시선을 잔뜩 보내왔다. 그런 관심이 자극제라도 되는 듯 거리를 가득 메운 운동본부의 의로운 외침은 더욱 굳건해져 갔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에도, 목 끝까지 차오른 숨막힘에도 그들은 꿋꿋하게 구호를 외치며 힘차게 거리를 누볐다. 

  경복궁역으로 향하는 도중 선발대 일원들은 각자 준비해온 발제문을 발표했다. 대학생기후행동 강원지부 김하종 대표는 일본의 결정이 명백한 학살 행위이자 기후 재앙을 핵 재앙으로 대체하는 반인륜적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발언을 이어간 대학생기후행동 박서현 씨는 “원자력 발전은 불평등을 기초로 한 제국주의적 발전으로, 원자력 사고와 핵폐기물을 유발하는 위험한 발전입니다”라고 외치며, 탈핵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심혈을 기울여 한 자 한 자 내뱉는 모습에서 그들의 염원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힘찬 발걸음과 함께 불타올랐던 행진도 경복궁역에 도달하자, 장렬히 막을 내렸다. 운동본부는 곧바로 그 앞에서 거리두기 1인 시위를 이어나갔다. 이곳에 모인 선발대 일원들로부터, 그날 행진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수생 자원을 연구하고 있어, 방사능 오염수 문제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는 인하대학교 재학생 조재민 씨는 “저뿐만 아니라 20대 청년들의 적극적인 행동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의 옆에서 광화문 북측광장을 등진 채 피켓을 들고 있던 강원대학교 장지창 씨는 “일반 청년이 사회적으로 의사결정의 선택권이 없는 계급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며, 일본 정부의 폭력적인 결정에 대응하고자 직접적인 참여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보람이 가득한 표정으로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다수의 사람이 함께 목소리를 내주셔서 기쁩니다”라고 덧붙였다. 행진 내내 현수막을 드느라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에는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의 철회를 향한 굳은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두 다리의 아픔에 힘겨워할 새도 없이, 깊게 전해져오는 그들의 진심에 마음이 미어졌다. 자발적으로 모여 힘겨운 땀을 흘린 채 내었던 열망 어린 목소리들은 잔잔했던 가슴을 적시기 충분했다.

  운동본부는 이윤과 권력이 내세운 일방적인 결정에 당당하게 맞서며 진실과 안전의 가치를 보호하려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아스팔트 위에 짙게 새겨진 수많은 발걸음과 강렬했던 행진의 잔흔, 그리고 외면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모두가 그려낸 열띤 함성까지. 이 날 행진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를, 더불어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해양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글 최유진 기자 cyj44126@naver.com
사진 이주은 기자 flowerjueun@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