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나는 연구년이었지만 코로나19로 해외도 못 가고 갇힌 신세였다. 하지만 응달이 있으면 양달이 있는 법, 덕분에 나는 평생의 친구를 하나 얻게 되었다. 바로 제주도다. 아내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며 그동안 몰랐던 제주도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뭐, 대단한 관광도 아니고 제주도에서 한 것이라고는 딱 네 가지뿐이었지만 그 기쁨은 최고였다. 그저 자고, 먹고, 보고, 걷기였다. 그냥 느리게 하루 보내기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서울에서는 감히 꿈도 못 꾸던 친구들이 생기는 게 아닌가. 바로 해, 달, 별, 나무, 바람……. 이런 기쁨을 서울의 지인들에게 말하니 제주도에 집이나 땅을 사두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는 오래전에 들은 한 일화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집 뒤에는 아담한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매일 아침 이 동상을 오르는 게 그의 낙이었다. 오늘은 민들레가 피었네, 오늘은 새 둥지에 알이 생겼네, 오늘은 정상에 안개가 끼었네, 중턱의 약수는 언제 마셔도 꿀맛이네,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어느 날 이 남자는 드디어 동산을 사게 되었다. 틈틈이 돈을 모아온 덕분이었다. 소유계약을 한 다음 날, 동산을 오르면서 그는 흥분되었다. 이제 민들레가 내 것이라니, 이제 새 둥지가 내 것이라니, 이제 정상의 안개가 내 것이라니, 이제 중턱의 약수가 내 것이라니.

  그러던 어느 날, 오늘도 변함없이 동산을 오르는데 저만치 구석에 이상한 게 보였다. 간밤에 누가 왔다 갔는지 빈 병과 휴지가 널브러져 있는 게 아닌가. 다음 날에는 약수터의 바가지를 누가 가져가 버린 게 아닌가. 그다음 날에는 어라, 떡갈나무 가지를 누가 꺾어놓은 게 아닌가. 그가 동산을 소유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그는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 동산 주변에 빈틈없이 철조망을 쳤다. 다음 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그는 철조망부터 살폈다. 그런데 어라, 누가 철조망을 하나 끊어놓았네. 다음 날 그는 더 튼튼한 철조망으로 바꾸었다. 이후 그는 매일 동산의 철조망을 살피는 게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누가 제주도의 별장을 빌려준다고 해도, 누가 제주도의 좋은 호텔을 싸게 소개해준다고 해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연구년 동안 세 번이나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지만, 숙소는 인터넷을 뒤져 모두 내 입맛대로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예약을 했고 이제 노하우도 생겼고 그 재미도 쏠쏠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내 것이 아니기에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동규 (공연예술대학 방송연예과) 교수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