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음악의 아티스트, 시대의 정서와 더불어 나만의 정서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예술이다. 많은 예술이 그렇겠지만 음악, 특히 대중음악은 다른 예술에 비해 수용자들이 특정한 시기에 한 완성물을 반복적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수용자들은 수없이 들은 음악에 자신만의 정서를 투영하게 되고, 그것은 시대의 정서이자 개인의 정서가 된다. 사람들이 이른바 ‘숨듣명’, ‘컴눈명’ 콘서트에 열광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음악은 시대와 시대를 거쳐 간 개인의 정서를 담고 있으니깐.


  나는 종종 내가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음악을 듣는다. 스티비 원더, 스팅, 레드 제플린, 오아시스, 이문세. 옛날 음악들을 듣다 보면 모르는 세계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듣는 옛날 음악은 음악이 세상에 나오기 전,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음악을 알기도 전에 녹음됐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녹음된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 사람들이 음악에 담았던 시간이 느껴진다. 그 시절 사람들의 시간이 이 시절의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걸까. 미디어에서 예전에 유행했던 음악이라고 틀어주는 걸 접했던 영향도 있겠지만, 전혀 몰랐던 옛날 음악을 들을 때도 과거의 시간이 내게 다가오곤 한다. 또 내가 살아간 시대의 음악을 들으면 그 시대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경험하지 않은 시대의 음악을 들으면 최대한 음악의 시간과 가까운 내 기억에 다가가게 된다. 음악을 감상하며 순차적으로 기억을 되짚는다. 성인이 된 후의 기억부터 시작해 학창 시절, 그리고 어린 시절까지. 기억을 되짚다 보면 어느새 내 모든 기억에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음악으로 여러 시간에서 살아갈 수 있다. 4분 남짓한 음악에 따라 기분이 손바닥 뒤집듯 달라진다.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며 현재를 살아가다가도, 언젠가 열렬히 들었던 음악을 통해 한때로 돌아간다. 옛날 음악을 듣고 과거를 엿보며 기억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내 플레이리스트는 뒤죽박죽이다. 최신곡, 3년 전에 들었던 곡,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곡 모두를 섞어 놓아 여러 시간을 오간다.


  시기별로 즐겨 듣는 음악을 꼭 정해 둔다. 음악에 이 시절 나의 세계를 담기 위해서. 내가 느꼈던 감정, 만났던 사람들, 사랑했던 것들을 모두 담아두고자 음악을 듣는다. 세계를 품은 음악은 나를 수많은 시간에 다다르게 한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도 부단히 음악을 들을 것이다.

김지은 학생 논설위원(국어국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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