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 국내 영화 10편을 ‘벡델초이스10’으로 선정했다. 이는 작품 속 여성 인물의 역할과 비중, 성 평등 정도를 판단하는 ‘벡델 테스트’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이 “벡델 테스트의 7가지 기준을 모두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이 극히 드물었다”고 밝힌 것처럼, 여성 서사는 아직 나아갈 길이 멀어만 보인다. 많은 관객과 독자가 여성 서사에 여전히 갈증을 느끼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뿐 아니라 책과 웹툰 등에서 더욱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가 다뤄지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기획 기사를 준비했다. 여성 대상 폭력과 유리천장, 마지막으로 여성 연대까지. 우리의 마음을 울린 여성 서사를 만나보자.

 

노희주 기자 nnwriggle@naver.com
김가희 기자 skyballoon00@naver.com
김도헌 기자 heenglow@naver.com
이주은 기자 flowerjueun@naver.com
전감비 기자 rkaql0502@naver.com
김한비 수습기자 hanb02@naver.com
송영은 수습기자 syet0530@naver.com

 

여성 서사, 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2년 전, 예술계를 뜨겁게 달군 여성 서사 열풍이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인기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 서사 작품을 향한 여성들의 꾸준한 관심일 것이다. 

  이전까지 작품에서 다뤄지는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보조 역할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뻔하고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고정관념까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부수듯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의 등장은 예술계의 새로운 자극이 됐다. 그리고 그 자극은 여성들의 공감과 관심으로 이어져 새로운 여성 서사 작품을 증가하게 했다.

  사실 진짜 뻔한 이야기는 여성 서사가 아니라 수년간 지속됐던 남성 중심의 작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한 이유는 그러한 작품들이 기본값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여성 서사의 작품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 서사 역시 기본값으로 자리 잡도록 그 입지를 넓혀가는 중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 서사 작품이란 무엇일까. 손희정 평론가는 자신의 저서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에서 이는 “한마디로 규정될 수 없고, 정답을 줄 수도 없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여성 서사에 대한 담론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고, 여성 서사가 다루고 있는 사건 혹은 이야기 내에 존재하는 인물의 단편적인 특성만으로 모든 여성 서사를 단순하게 분류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여성 서사는 명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개념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서사 작품 속에는 지금껏 쌓아왔던 억압과 폭력, 즉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문제 상황이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여성 서사 작품에선 여성 창작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도전적인 시야를 체감해볼 수 있다. 익숙하게 느꼈던 행동이 차별임을 직시하게 하는 힘이 그 안에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성 서사 작품을 보고 편안하게 웃음 짓고, 분노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토록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여성 서사 작품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작품의 세계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는 이들을 만나볼 차례다. 

 

여성을 향한 폭력, 이젠 거둬야 할 때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정을 계기로 여성 이슈에 관한 관심이 커졌던 2019년 여름에는 그 어느 해보다 여성들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담긴 여성 서사 영화가 많이 개봉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메기>와 <벌새> 그리고 <밤쉘: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하 <밤쉘>)이 있었다. <밤쉘>은 많은 여성으로부터 응원과 지지를 받았으며, <메기>와 <벌새>는 각각 ‘메기떼’, ‘벌새단’이라는 팬덤을 형성해 n차 관람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 <메기>와 <벌새>, <밤쉘>이 담아낸 여성을 향한 폭력과 많은 여성이 이 영화에 열광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여성 감독이 전하는 ‘진짜 여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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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메기>는 병원 앞 동상에 X-ray 실에서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X-ray 사진이 걸리는 사건을 시작으로 전개된다. 이에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진의 주인공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빠진다. ‘찍힌 게 누구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현실 사회 속의 모습처럼 말이다. 주인공 ‘윤영’ 역시 자신이 촬영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사직서를 내러 부원장실에 방문한다. 부원장 경진은 윤영을 보자, 사실 여부 하나 물어보지 않은 채 그를 사진의 주인공으로 몰아가며 징계가 내려올 때까지 휴직하라고 권고한다. 그러자 윤영은 경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병원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사진의 대상은 정말 윤영이 아니었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찍힌 피해자에겐 죄가 없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전면에 드러내는 <메기>는 불법 촬영이 만연하게 이뤄짐과 더불어, 피해자의 고통까지 묵인하는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한편, <벌새>는 1990년대 당시 가부장제 속에서 폭언과 폭행에 적나라하게 노출됐던 여성의 삶을 극적으로 담아낸다. 극 중 중학생 은희와 지숙 역시 친오빠에게 이유 없이 맞아왔고, 결국 폭력에 체념하고 마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지라는 인물을 통해 이들이 폭력에 순응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영지는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라고 말하며, 은희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러한 영지의 따뜻한 대사는 비슷한 아픔을 함께 앓아왔던 여성 관객들에게도 위로를 건넨다.

  이렇듯 두 영화는 전체적인 분위기도, 담고 있는 내용도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두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비슷한 포인트에서 매력을 느낀다. 이는 두 작품이 그간 발언 되지 않았던 여성의 이야기, 즉 여성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폭력을 특유의 시선으로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성 연대, 또 다른 폭력을 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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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밤쉘>은 실제로 2016년 미국 미디어 산업 내에서 최초로 고발된 권력형 성범죄 소송 사건을 바탕으로, 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폭스뉴스’의 사장 로저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한 앵커 그레천은 성적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해 로저를 고소한다. 이후 그레천은 직장 내 같은 피해를 받은 여성들의 증언을 기다리지만,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메긴을 비롯한 또 다른 피해자들은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의 범죄 행각을 내부고발한다면, 이에 따른 부당한 대우가 꼬리표처럼 따라오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권력형 성범죄가 내부고발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더불어 <밤쉘>은 폭스뉴스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가상의 인물 케일라를 통해 권력형 성범죄를 명확히 정의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생생히 그려낸다. 로저는 케일라에게 “내가 당신을 방송국 맨 앞에 꽂아줄 수 있지만, 대신 나에게 보답해야 한다”라며 “그 보답은 충성심이다. 충성을 증명할 방법은 직접 찾아라”고 말한다. 이처럼 권력형 성범죄의 가해자는 지위를 이용해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을 내놓으며,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한다. 로저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 대다수의 권력형 성범죄는 성폭력을 간접적으로 요구하는데, 이는 마치 피해자의 의지로 관계가 이뤄진 것처럼 상황을 왜곡해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이후 케일라가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스스로가 더럽다고 말하는 장면은 범죄의 화살이 또다시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영화 속 결말처럼 실제 사건 역시 여성들의 승리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성들의 연대가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로저를 향한 그레천과 메긴, 케일라의 고발은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초반, 모두가 고발을 망설였던 것처럼 직장 내 권력형 성범죄는 여전히 피해자에게 불리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속적으로 연대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더이상 여성을 향한 폭력이 ‘상대가 안 되는 싸움’으로 남지 않기 위해.

 

‘유리천장’을 부수고 나온 여성들

  오랜 기간 여성은 차별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 앞에 부딪혀왔다. 자신의 꿈에 도전할 수도,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도 없었다. 이러한 유리천장을 부수고 꿈을 이룬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 있다. 바로 영화 <더 컨덕터>와 웹툰 <정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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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컨덕터>와 <정년이>, 꿈을 위해 맞서다

  먼저, 영화 <더 컨덕터>는 최초의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의 일대기를 다뤘다. 그는 여성으로선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지휘했으며 수많은 억압을 이겨내고 여성 지휘의 포문을 열었다. 웹툰 <정년이>는 한국의 여성 국극단을 배경으로, 패기 넘치게 매란국극단에 들어온 주인공 윤정년의 성장기를 담아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제 국극 배우들을 모티브로 삼아 우리나라 여성 국극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더 컨덕터>와 <정년이> 속 캐릭터들은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나간다. <더 컨덕터>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 미국은 여성이 가진 재능과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안토니아 브리코 역시 성별의 한계에다 어려운 가정형편과 노동자 신분까지 더해져 앞날이 어둡기만 했다. 그가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외칠 때, 사람들은 “여성은 남성 단원들을 통솔할 수 없다”며 비웃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유명 지휘자를 무작정 찾아가 지휘 레슨을 요청했고, 마침내 음악 학교에 입학해 마에스트라로서 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수많은 노력과 집념 끝에 그는 사회적 장벽을 부수고, ‘최초’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그렇다면, 웹툰 <정년이> 속 캐릭터들은 어떨까. 1950년대 한국,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으며 살아야 했다. 이런 사회적 풍토에 대항해 여성 국악인들은 여성 국극단을 결성했다. 주인공 윤정년은 처음엔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 국극단에 입단했으나, 단원들과의 경쟁을 통해 점차 성장하게 된다. 그들의 경쟁은 누군가를 끌어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배역과 무대를 향한 열망에서부터 나온다. 이를 통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받게 되는 것이다. 이 경쟁 속에는 사회적 편견도 제한도 없다. 남성이 개입하지도, 여성이 남성의 힘을 빌리지도 않는다. 그들은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것들을 스스로 이뤄내며,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더욱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도전은 여전히 빛난다 

  <더 컨덕터>와 <정년이>의 공통점은 여성 인물이 겪는 고뇌와 갈등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남성에 의해 묘사되거나 도구화되지 않고, 사회의 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설령 실수하거나 좌절하더라도, 그 순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인간상을 그려낸다는 가치가 있다.

  두 작품은 지금과는 다른 시대 배경을 다루고 있지만, 현재의 2021년과도 유기성이 짙다. 현재에도 여전히 특정 직업에 대해서는 ‘여성은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존재할 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관객과 독자는 현재 사회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다름없음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다시 한번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여성의 입지를 꿋꿋이 다잡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모습이 현재에까지 울림을 전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을 접하기 전까지는 여성 지휘자 안토니오 브리코와 우리나라의 여성 국극단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사를 서사화하고, 예술로 재현함으로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다. 지금의 여성들은 여성 서사 속 인물들을 거울삼아 이 시대의 유리천장을 깨부술 용기를 얻는다. 현시대가 또다시 미래의 거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따스한 기운으로, 한 발 더 내딛으며

  여성 대상 폭력과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사회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중심에는 여성들이 또 다른 여성에게 내밀어준 손길이 있다. 지난 7월에 등장한 영화 <블랙 위도우>와 장편소설 『밝은 밤』, 현재도 연재 중인 웹툰 <아홉수 우리들>까지. 최근 여성 서사 작품 속에서 우리가 꾸준히 연대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찾아봤다.

<블랙 위도우>, 상상을 넘어 현실이 되기까지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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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영화 <블랙 위도우>는 ‘위도우’가 된 여자아이들을 직접 구원하는 여성들의 연대 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이는 ‘여성은 약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라는 강박을 깨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며 영웅 장르의 한 획을 그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빼앗긴 여성들의 해방을 위해 몸 사리지 않은 이들의 영웅적인 면모를 살펴보자.

  우선, 나타샤와 옐레나는 위도우들이 갇힌 악의 조직 ‘레드룸’의 위치를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레드룸은 이미 종적을 감춘 상태였기에, 이들의 힘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었다. 이때 레드룸의 과학자였던 자매의 양어머니 멜리나는 나타샤가 자신의 모습으로 위장해 조직의 기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총 3명의 여성이 힘을 모아, 위도우들의 구출에 성공한다.

  한편, 극 중 위도우들은 몸에 약물이 주입돼 악당 드레이프코프의 페로몬을 맡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신체적 한계를 지닌다. 나타샤 역시 과거 레드룸에 속해 있던 위도우였기 때문에, 드레이프코프에게 맞서기엔 불리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는 스스로 책상에 코를 박아 후세포를 파괴하며, 드레이프코프에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레드룸에 갇힌 위도우들은 고정된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여성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침내 여성들만의 연대감으로 위도우들이 완전한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블랙 위도우>에서 거머쥔 성취처럼, 부당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현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냥 그렇게, 서로의 손을 맞잡는 우리들

ⓒ네이버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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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웹툰 <아홉수 우리들>에서도 연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성만 다르고 이름은 같은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가 등장한다. ‘우리들’은 각자가 처한 환경과 살아가는 방식이 전부 다르다. 그럼에도 서로를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직면한 각기 다른 고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봉우리는 5년 만난 남자친구와 갑작스럽게 헤어지면서 삶이 크게 흔들린다. 더불어 직장에선 자신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해고를 당한다. 차우리는 승무원으로서 남부러운 것 없어 보이지만 집안의 가장이라는 짐이 있다. 김우리는 오랜 시간 공무원 시험 준비에 허덕이며, 29년 동안 좋아하는 것 하나 찾지 못한 자기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 나이를 먹으면 어느 분야든 완벽할 자신을 꿈꿨던 우리들이지만, 이들의 현실은 어쩐지 삭막하기만 하다.

  그러나 웹툰 속 우리들은 여러 고난에 망가진 삶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다. 서로의 온기가 필요할 때 곁에 친구들이 있기에, 이들은 각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다정한 위로의 손길로 서로를 대한다. 이에 따라 봉우리는 잠시 잊었던 꿈을 향해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차우리는 일하는 시간과 휴일을 분리한 채 삶을 즐기고, 김우리는 지친 자신을 위해 때로는 용감히 포기하는 법도 배운다.

  이렇듯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의 과거를, 일상을, 그리고 앞날을 바라보는 참우정은 또 다른 연대의 발판이 되려 한다. <아홉수 우리들>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 여성들에게 쓸쓸한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힘을 안겨준다.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직 무궁무진하지만, 이들이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자신만의 시간을 채워나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밝은 밤’을 향해 전해져오는 이야기

ⓒ예스24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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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소설 『밝은 밤』은 지연이 ‘희령’이라는 마을로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할머니로부터 여성 선조들이 살아왔던 삶을 전해 듣는 과정에 따라 전개된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에선 100년 전 여성들의 자매애를 발견할 수 있다. 증조모는 군인에게 잡혀가지 않기 위해 선택해야만 했던 결혼 생활에서 증조부의 측근인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고, 이들은 서로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꿋꿋하게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러한 연대 의식이 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의 딸인 희자에게도 이어져 오면서, 이들 간의 우애는 점점 깊어 간다.

  지연은 이들의 삶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는다. 특히 증조모에게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증조모는 백정의 딸이었지만 자신의 신분에 주눅 들지 않고,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러한 증조모로부터 지연은 차별 어린 시선에도 스스로를 숨기지 않는 법을 배운다.

  한편, 지연이 ‘희령’이라는 마을로 향한 것은 일종의 도피였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외면이기도 했다. 지연은 전남편의 외도로 그와 이혼했지만, 사람들은 그것마저 지연의 탓으로 돌렸다. 심지어 가족도 전남편의 편을 들어주며, 그를 용서하라고 강요했다. 따라서 지연이 희령에 와서 할머니를 만난 것은 더욱 특별한 인연으로 다가온다. 할머니는 지연의 아픈 속내를 묵묵하게 들어주며, 따스한 손길로 그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소설 『밝은 밤』에서 과거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여성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연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돼준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양한 여성 서사 작품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분노와 슬픔을 경험하고, 한편으론 위로와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여기서 얻은 따스함이 작품 속 세계에서만 그치지 않도록, 가까이에 존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차례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줄 수 있다. 현실에서 직면한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에 한 발자국 다가선다면, 머지않아 이러한 여성들의 연대가 세상을 평등하게 바꾸는 중심이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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