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및 보호자 상담이 진행되는 서울해바라기센터 ‘느티나무 상담실’의 모습이다
△피해자 및 보호자 상담이 진행되는 서울해바라기센터 ‘느티나무 상담실’의 모습이다
△경찰관과 의료진에 의해 성폭력 피해자 증거채취가 이뤄지는 응급키트다
△경찰관과 의료진에 의해 성폭력 피해자 증거채취가 이뤄지는 응급키트다
△친족 성폭력 자조 집단 겨울 캠프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다
△친족 성폭력 자조 집단 겨울 캠프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다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가 2월 28일 자로 사업 종료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올해 2월,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의 출입문에 적힌 안내문이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18조’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 보호·지원 시설의 설치·운영을 근거로 설립된 여성가족부의 산하기관이다. 그러나 작년에는 경기도의 한 해바라기센터가, 재작년에는 전남에 있는 해바라기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총 39개의 센터만이 남게 됐다. 이렇듯 해바라기센터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해바라기센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해바라기센터를 직접 방문해 정명신 부소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폭력, 회피 대신 해결이 필요
  서울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가 범죄 피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관으로, 경찰청과 협업해 피해자 진술 수사를 돕고 피해자에게 상담 및 정신적·신체적 치료를 지원한다. 2011년 2월 16일에 개관한 이래 2021년 2월 15일까지 서울해바라기센터에 도움을 청한 건수는 총 11,976건으로, 방문 원인으로는 △성폭력=82.2%(9,849명) △아동 폭력, 성매매 피해를 포함한 기타=9.5%(1,134명) △가정폭력=8.3%(993명)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또한, 서울해바라기센터에 실제로 방문한 건수는 총 7,700건이며, 이 중 84%(6,446건)는 경찰서를 비롯해 사회복지기관, 긴급전화 등 각종 기관으로부터 안내받아 센터에 오게 됐다.

  한 사례로, 성폭력 피해를 받은 A 씨는 피해 직후 112 신고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에 담당 경찰관은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했다. 이로써 서울해바라기센터에 방문하게 된 A 씨는 가장 먼저 전문 상담사와의 상담을 통해 피해 정황을 털어놓았다. 이후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선 의료팀과 수사팀이 참여하는 ‘응급사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선 앞으로 피해자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 논의했다. A 씨의 경우에는 의료팀의 안내에 따라, 응급 증거물 채취 및 산부인과 진료가 진행됐다. 그다음엔 전문 훈련을 받은 센터 수사관이 A 씨의 피해 진술을 듣는 과정이 이어졌다.

  더불어, A 씨의 경우 성폭력 피해 사실로 인해 생겨난 대인기피와 우울감으로 고통받았으며, 부모님과도 이전처럼 지내기 어려워했다. 이에 해바라기센터에서는 A 씨와의 지속적인 면담 시간을 가졌으며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특히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서 A 씨는 같은 피해를 겪은 친구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점차 상처를 극복해냈다. 또한,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선 A 씨의 부모님을 대상으로 한 상담도 이뤄졌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의 가족으로서 느낄 수 있는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A 씨가 트라우마로 힘들어할 때 보호자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교육 내용도 포함됐다. 이처럼 해바라기센터는 전문적인 성폭력 긴급 대응과 함께, 장기적으로 피해자의 정서 회복을 돕고 있다.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한편, 여러 유형의 젠더폭력 중 서울해바라기센터가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친족 성폭력’이다. 정 부소장은 “흔히 친족 성폭력은 친척이 가해자인 사례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아버지에 의한 성폭력도 적지 않은 편이다. 이는 자신을 보살펴줘야 할 가족,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보호자가 성폭력을 행하는 것이기에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며 친족 성폭력에 대한 구체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해바라기센터는 ‘친족 자조 모임’을 형성했다. 친족 자조 모임이란, 친족 성폭력 피해자들이 모여 서로의 마음을 지지해주며 심리적 안정을 추구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서울해바라기센터의 프로그램으로 캠프를 가거나 연극을 관람하기도 하며,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도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안부를 물으며 유대감을 쌓고 있다. 실제로 친족 자조 모임의 일원 B 씨는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겨서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서울해바라기센터는 ‘디지털 성폭력’에 관한 상담도 이뤄지고 있다.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 발행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 신고 및 상담 분석보고서>에 의하면 대중의 인식에서 성희롱은 주로 언어적인 희롱을, 성폭행은 신체적인 침해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정 부소장은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 유형의 경계를 허물며 성범죄를 진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선 가정에서부터 인권 감수성이 체화될 수 있도록 가정 내 교육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해바라기센터는 현재 해당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팀과 디지털성범죄지원센터 등 전문 기관과 연계를 통해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중이다.
 

센터 운영 이대로 괜찮은가
  그렇다면, 코로나19(이하 코로나)가 성행하는 지금 해바라기센터는 문제없이 잘 운영되고 있을까. 서울해바라기센터의 경우, 코로나 이후 대면 상담과 온라인 상담이 모두 폭증해 인력 운용이 빠듯해졌고, 결국 개개인의 업무가 가중됐다. 또한, 앞서 밝힌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는 대신 센터를 운영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폐관됐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병원 자체의 인력도 부족해졌기에, 서울북부해바라기센터를 운영하겠다고 나선 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해바라기센터는 여러 이유로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나 운영의 어려움이 비단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 정 부소장의 의견이다. 그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바라기센터의 운영을 담당하는 병원이 지닌 책임에 비해, 센터나 병원에게 주어지는 정부의 지원이 미미하다는 점에 있다”고 밝혔다. 해바라기센터는 특정 병원이 센터 운영을 필수로 맡아야 하는 구조로, 이에 따라 병원은 추가적인 공간과 산부인과·응급의학과 의료진을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해바라기센터는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으로 운영되지만, 이조차 풍족하지 않아 늘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정 부소장은 “이용자 수가 몰리는 센터의 경우 인원 확충과 예산 확대가 필요하며, 센터가 장기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전문 인력 양산 시스템 역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바라기를 활짝 피우려면
  한국의 해바라기센터 유형은 각종 개발도상국에서 견학을 올 정도로 대외적으로 큰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정 부소장은 “센터가 없던 시절에는 피해자들이 병원, 경찰서, 법률사무소 등 온갖 기관을 직접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해야 했어요. 그마저도 피해자가 나서준다면 다행이었죠. 실제로는 대부분 피해 사실을 숨기며 혼자 아픔을 감당해야 했습니다”라며, 해바라기센터의 설립은 묵인됐을지도 모를 수많은 젠더폭력을 수면 위로 올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바라기센터를 향한 관심과 지원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실제로 지난 9일, 본지가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해바라기센터를 들어보셨나요?’라는 물음에 ‘예’라고 답한 학우는 29%(24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해바라기센터가 하는 일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고작 13%(10명)만이 ‘알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해바라기센터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제대로 된 처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해바라기센터는 점점 사라질 것이고 이는 범죄 대응의 공백으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해바라기센터가 피해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자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젠 해바라기센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고, 모두의 관심과 응원이 이어져야 할 때다.

 전감비 기자 rkaql05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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